영화보는내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일본 침략기 잔재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20세기초 일본인이 갔다붙힌 태백산맥,소백산맥, 차령산맥등 주요 지명들도 순수 우리말로 갈아치워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영화관람 했습니다... 하여튼 토착 왜구들이 주기적으로 염장을 지르네요... 이번엔 "건국전쟁"이고요... 유니클로가 국내에서 여전히 운영되는 것도 죽갔고만 말입니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옥매산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고자 박은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을 뽑기 위해 말뚝에 천을 묶고 있다. 2012.8.15.
주말쉬시고 오시는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막내놈만 잠시 맡겨 놓고 오후에 첫째와 둘째만 데리고 아내와 "파묘"보러 갑니다... 두 놈들한테도 서서히 민족의식 고취시켜야 합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78
주요 블로거들한테는 지난주부터 이 영화 관련 CJ CGV와 쇼박스가 급등중이라는 정보투자의 시작 "어떤 투자 사실과 자료"를 알려드리고요^^ 주말에 500만/600만 돌파후 천만명 돌파도 가능할듯요... 총선전까지요...
삼일절에 양민 학살의 대명사 독재자 이 승만이를 언급하지를 않나...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 쪽바리들을 위한 제3자 배상이라는 굴종외교처 한일 수교를 언급하지를 않나..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70
3.1절 기념에 갑자기 통일...?? 그렇다면 백범 김 구선생을 언급해야지... 이 승만/박 정희를 풍기는 뉘앙스는 또 왜 취하는건데... 내가 독재자 이 승만이 하면 생각나는 여러 부정적 평가중에 말이다... 6.25 전쟁 당시 대통령 이 승만, 국방부 장관 신 성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각료들은 이미 서울을 떠나 피란을 간 뒤, 이 승만은 27일 저녁에 대전 충청남도지사 관저에서 전국에 미국이 참전했으니 공산군에게 항복하라는 방송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에 낚여 피란을 떠나지 않은 일부 서울 시민들 및 정치인들은 다음날 한강 교량들이 폭파되어 발이 묶이고 서울시가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었다. 한강 이북에는 국군 병력들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로써 국군 전력에도 상당한 타격이 되었고 말이다. 요즘 고려거란전쟁에서 말이다... 거란의 외침에 개경 시민들부터 살리려고 했던 현종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모질이 이 승만이는 보였다는 사실이다... 지는 이미 대전에 가 있으면서 백성(국민)들에게는 피난가지말고 서울을 사수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상모질이 윤씨 머리속에는 도대체 자주적 외교와 외세 침략의 대항의지는 있는건지, 이런 놈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살아야하는 나를 포함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오늘 기념사는 치욕과 오욕의 역사를 살아온 한민족에게는 일고의 들을 가치도 없는 굴종 기념사라고 혹평한다...
난 대학교 연합서클(스포츠서울 사회부 대학생명예기자) 선후배 사이인 산소같은 여자 이 영애씨의 이 승만기념관 기부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경솔했어야, 이건 아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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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민족주의자인 백범 김 구 선생의 암살 배후이자 농지개혁을 실질적으로 추진했던 진보주의의 거성 죽산 조 봉암 선생을 사형시키고, 민초들의 독재항거 4.19에 총알 세례를 퍼붓고 한국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독재자 이 승만이를 다시 부각시키는 영화 "건국전쟁"... 이런 영화를 100만명이나 봤다고 하네...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반민족행위자들인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그 자손들이 독립운동 후손자들보다 잘사는 꼴을 보고 있고만, 이런 뭣같은 영화를 만든 또라이들이 있다니 개탄할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은 상해 임시정부부터이며 해방전까지 정부수반이였던 김 구선생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첫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이 승만이 된게 한민족한테는 치명타였음을 부인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사안에 미군정과 친일세력이 야합한 것을 안다면... 결국 정치적 경쟁자 김 구선생을 이 승만이 죽였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알고 있고만... 어이가 없네...
천인공노할 조선국모 민비시해, 1910년, 조선인 관동대학살, 731부대의 생체실험, 전쟁범죄 위안부와 강제징용... 난 일본을 용서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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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현재까지도 반성과 사과를 제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하지 않고 있고, 과거를 뭍고 따블로 가잔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천황과 일본총리가 부산포로 건너와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살려는 드릴께"라고... 그러지 않는한 죽을때까지 내 머리속에서 일본은 천인공고할 전쟁범죄 국가이며 극우 세력이 운영하는 곳일 뿐이며 그간의 범죄에 대한 벌로 대지진으로 망했으면 하는 나라일 뿐이다... 독도가 문제가 아니고 '대마도'는 원래 우리땅이니 국제분쟁지역화해야하고, 제7광구는 우리측 영토에 대한 석유 시추/개발을 즉각 시행해야하며, 이런 전쟁범죄 국가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 하여튼 토착 왜구인 "롯데그룹"이 주기적으로 염장을 지르네... 유니클로가 국내에서 여전히 운영되는 것도 죽갔고만 말이다... GI IR실장 윤 숙영씨와 인터넷(홍보)팀장 정 은영씨가 이 주말에 전하는 네티즌 동향을 글로 올리고 있는 중이다...
신규 공모주 상장일이 중요하듯이 주요 영화도 개봉 시기가 중요하네요^^ "글래디에이터"의 그 호아킨 피닉스 "나폴레옹"은 관심없고 제 생일날 개봉일인 "노량" 기다리고 있는 중...
https://samsongeko1.tistory.com/12969
아래는 영화관람후 초저녁에 주요 5개 SNS에 올린 코멘트입니다...
""삼겹살데이는 2003년 국산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행사다. 삼겹살은 원래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삼겹살의 뜻은 "돼지의 갈비에 붙어있는 살로 비계와 살이 세겹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를 뜻한다. 삼겹살의 원래 세겹살, 삼층제육으로 불리다가 1959년 한 신문에 처음으로 '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삼겹살이라고 불리게 됐다. 삼겹살의 인기가 시작된 건 1970년대로 알려졌다. 육가공업체들이 일본에는 돈가스용 등심·안심을 수출하고, 삼겹살과 돼지족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내수 시장에 유통했다. 이후 삼겹살은 서민들의 고된 삶을 달래주는 소울 푸드가 됐다. 또 과거 광부들이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 내는데 최고라며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황사 낀 날에는 삼겹살'이라는 속설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관람 끝내고 산본중심상가내 한 정육코너에서 삼겹살 사 집들어가는 길~~~^^ 두 아들놈과 걸어서요^^ 아내가 잠시 중앙공원에서 바람 좀 쐬자네요^^ 게코(Gekko)"
[多-리뷰해]‘곡성’이 부럽지가 않아, ‘파묘’
최 민식·김 고은·유 해진·이 도현... ‘묘벤져스’ 탄생...
‘노’공포 ‘유’잼... 허리끊긴 두 이야기에 ‘호불호’ 극명...
그럼에도 ‘곡성’ ‘서울의 봄’ 꺾었다... 개봉 7일만 300만 돌파...
[작품소개]
영화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로 ‘오컬트 장인’이란 수식어를 얻은 장재현 감독표 공포 3부작의 피날레. 독보적인 오컬트 미스터리 세계관을 구축해 온 장 감독의 가장 대중적인 신작. ‘국민 배우’ 최민식과 ‘대체 불가’ 김고은, ‘호감갑 만능’ 유해진, 스크린 데뷔에 나선 청춘스타 이도현까지, 신구를 아우르는 ‘묘벤져스’의 탄생. 손익분기점 약 330만.
[줄거리]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제자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까지 합류한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 중에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오고야 만다.
어렵사리 상황이 수습되는가 싶더니 역대급 ‘험한 것’과 마주하게 된다. 막을 수도, 없앨 수도, 근처만 가도 화를 면할 수 없다는 그것, 이들은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오프닝]
‘밑도 끝도 없이 부자’라는 집안에 기이한 병이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젊은 무당이 LA로 향한다. 태어난 뒤부터 이유 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 더없이 화려하지만 서늘한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저택.
어딘가 수상한 기운 속, 무당은 이 모든 것의 화근이 묫바람이라 직감하고 이장을 권한다. 화가 난 조상신을 달래는 대가로 거액을 제안받은 무당은 베테랑 풍수사, 장의사와 함께 협업을 시작하는데...
본 적 없는 악지에 묻힌 기이한 묘가 이들을 맞이한다.
[캐릭터 소개]
# 땅 찾는 풍수사, 상덕(최 민식)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위해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 조선 팔도 안 밟아 본 땅이 없는 베테랑으로, 풍수사로서의 자존심도 대쪽 같다. 누울 자리를 봐 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일단 단가부터 계산하지만,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무당 ‘화림’을 통해 거액의 이장을 제안받은 그는 하나뿐인 딸의 결혼 자금을 벌 겸 이를 수락하지만, 악지 중의 악지에 자리한 묘 터를 보고는 고뇌에 빠진다.
# 원혼 달래는 무당, 화림(김 고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 과학과 미신,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 원혼을 달래는 요즘 대세, 톱클래스 무당이다. 자신감 뿜뿜, 미모도 카리스마도 넘치는 데다 ‘신빨’도 좋다. 두터운 신뢰를 나누는 제자 ‘봉길’과 함께 움직인다. 컨버스 신고 굿 하고, 스피닝으로 여가를 보내는 MZ 무당.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집안의 장손으로부터 이장을 의뢰받고 풍수사 ‘상덕’, 장의사 ‘영근’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지만 이후 기이한 사건에 휘말린다.
# 예를 갖추는 장의사, 영근(유 해진)
대통령도 염한 명성 있는 장의사다. 나름대로 독실한 크리스천에 경건히 내뱉는 ‘아멘’이 어색하지 않은 교회 장로인데, 토속 신앙과 무속의 한 가운데에서 이장을 진행하는 모습이 능청스럽다. 신앙과 업의 상호 모순을 누구보다 매끄럽게 봉합해내는 프로. 소탈하지만 적당히 세속적이라 더욱 인간적이다. ‘상덕’의 오랜 파트너로, 거액의 돈과 함께 이장을 제안받고 다시 협업에 나선다.
# 경문 외는 제자, 봉길(이 도현)
야구 선수를 꿈꿨지만 신병을 앓고 난 뒤 무당이 됐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화림’에게 구원받아 그녀의 제자로 곁을 지킨다. 아직은 배울 것이 많지만, 위험천만한 의식의 과정에서 화림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다. 수상한 묘를 이장하며 시작되는 기이한 사건들의 가운데에서 결정적으로 활약한다. 훈훈한 비주얼도 열일한다.
[단소리]
# 초초초강력 팀플레이... ‘묘벤져스’의 탄생...
개성갑 캐릭터들의 낄끼빠빠 확실한 완벽한 앙상블. 풍수사 최민식은 내내 든든하게 이끌며 엔딩요정까지 확실. 무당 김고은은 예고했던 시그니처 장면들을 담당, 완벽한 미션 클리어.
유해진은 조력자이자 베테랑 쉼표로 유쾌한 유머를 책임진다. 이도현도 사건의 정점에서 기대 이상의 에너지로 무한 가능성을 뽐낸다. (다 ‘투잡’ 뛰셔도 되겠어요.)
구멍 없는 명품 연기요, 알찬 시너지다.
각각의 직업들은 묘를 이장할 때 저마다의 능력으로 극의 재미를 높이며 ‘멀티 캐스팅’의 진수를 보여준다. 익숙한듯 새롭고 낯설지만 생생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며 합리적 역할 분담의 끝을 자랑한다.
# 마니아 장르에 대중성을... 뚝심 도전 마침내 진보...
장 재현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란 평가.
정통 오컬트물의 성격이 강했던 ‘검은 사제들’, 다소 복잡했던 ‘사바하’에 비해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감독의 의도가 바로 두 작품 사이의 ‘균형미’란다. 발전했다는 평을 가장 듣고 싶다고).
캐릭터들의 협업이 영화를 이끌고, 단순한 공포 그 이상의 미스터리한 재미가 솔솔. 오컬트 장르, 풍수와 무속까지 진입 장벽이 높은 것들만 모아놨지만 과하게 어둡거나 어렵지 않아 대중픽(Pick) 장르물로 제격이다.
[쓴소리]
# 대중 잡았지만 팬들은 배신감... 판 뒤 또 파는 후반부 ‘호불호’
처음 파낼 땐 오컬트 장르 맞고, 두 번째 파낼 땐 좀비 추적물로 급변화. 역사적 메시지까지 담기며 ‘파묘’ 콘셉트와 장르적 매력을 두고 극명하게 갈린 호불호.
전반부가 관객이 메가폰에 기대하는 바였다면, 후반부는 메가폰이 보여주고픈 욕망이 담겼다(함축적 의미를 담은 이야기에 힘을 싣고, 더 직관적이고 체험적인, 화끈한 육체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색다른 재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공포 지수가 급락해 기존의 장 감독 팬들은 ‘오컬트물이 맞냐’며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 제일 ‘험한 것’ 비주얼이 왜그래?
‘
험한 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생김새라...무섭다기 보단 징그러움. 절제미가 돋보였던 전반부에 비해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기대만 못함.
알고 보니 일본의 오컬트 콘텐츠에 등장하는 요괴 ‘오니’를 형상화. 누레온나(濡女·젊은 여자 얼굴에 뱀의 몸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일본 요괴)를 연상시키는 사람 머리를 한 뱀 등 귀신,
요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일본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는 낯선 비주얼.
[알쓸묘팁 알아두면 쓸모있는 파묘 관람팁]
‘쇠말뚝’을 둘러싼 일종의 음모론이란, 일본이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내용. 이런 설을 오컬트 영화로 끌고와 ‘땅’이 은유함. 바와 땅에 담긴 사람의 욕망, 우리 민족의 한과 염원 등을 녹여냄.
파묘로 시작된 으스스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결국 산 것과 죽은 것이 각자 자리로 돌아가고 끊어진 것은 다시 이어진다는, 음양오행의 조화가 담긴 결말로 마무리.
[흥행소리]
‘곡성’ ‘서울의 봄’도 꺾었다. 2월 22일 오프닝 스코어 33만, 첫 주말 관객수 약 230만. 개봉 7일 만인 28일 300만명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음.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초반 성적도 좋음. 캐릭터 위주의 전통 오컬트물로 서사는 다소 미약했단 ‘검은 사제들’과 깊이 있지만 투머지 복잡한 서사로 관객층이 나뉘었던 ‘사바하’의 중간 지점,
피날레다운 균형미가 돋보인다. 다만 오컬트 팬들에겐 실망이요, 독특한 팝콘 무비로 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다행히 손익분기점(330만)이 터무니 없이 높지는 않아 ‘호불호’를 극복하고 흥행을 기대해볼만 하다.
[관객소리]
호
배우들 연기가 진짜 미쳤음, 특히 김고은! 믿고 보는 ‘K-오컬트 장인’ 그리고 미친 앙상블, 마니아 장르를 대중 영화로 끌어올린 힘, 심장이 쫄리다 벅참, 그냥 무섭기만 한 것보단 의도 있는 연출이 기막힘,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를 넘어선 창초적인 시도와 이야기가 굿, 죽어서도 끊나지 않을 것 같은 영혼의 한일전, 엄청난 자료 조사와 인터뷰 했다는 게 티나는 디테일 갑, 캐릭터가 살아 있고 끝까지 쫄깃한 스토리...또 본다, ‘묘친자’ 될듯, 개성도 대중성도 작품성도 다 잡았다, 오랜만에 극장간걸 후회 안 했다
불호
초중반 높은 몰입도 후반으로 갈수록 산으로, 딱 중간까지만 흥미진진, 좀비물임? 험한 것 비주얼이 깸, 잘 가다가 완전 전복돼 실망이다, 기대했던 오컬트가 아니어서 실망 그리고 배신감, 귀신이 안 무섭고 좀비는 웃기고.
[제 점수는요(★5개 만점, ☆는 반개)]
# 별점 ★★★
이대로 못보내, 묘벤져스(양소영 기자)
# 별점 ★★★
오컬트 말고 캐릭터 무비...민식이형 알러뷰, 브라보 김고은!(한현정 기자)
# 별점 ★★★
험하지만 신명나는 칼춤(OTT 담당 기자)
# 별점 ★★★★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묘하고 화끈한 A급 오컬트물(극장 관계자)
# 별점 ★★★★★
장재현 월드를 지탱하는 ‘프로’의 소명(영화 관계자)
매일경제 한 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보수 우익 신문 논조 - 에디터 프리즘]‘파묘’와 쇠말뚝...
영화 ‘파묘’는 우리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승전, 쇠말뚝일까요. 장재현 감독은 “풍수사들과 땅을 얘기하다가 보면 결국 쇠침에 다다랐다”고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쇠말뚝’, 그리고 작은 글씨로 옆에 한자 ‘鐵針(철침)’으로 적습니다. 그렇습니다.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영화는 ‘일제의 쇠말뚝 박기’를 모티브로 합니다. 일제가 혈(穴)자리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풍수침략’이라고 부릅니다.
일제 쇠말뚝 뽑기 운동이 크게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딱히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 정도입니다.
1995년 3·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내무부(현재 행정안전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가 심은 쇠말뚝을 대대적으로 뽑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쇠말뚝 뽑기가 정부 주도로 바뀐 겁니다.
당시 민간 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는 ‘1985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길이 40㎝, 직경 3㎝의 쇠말뚝 22개를 뽑았고, 93년 9월에는 속리산 문장대에서 2개를 제거했다’는 성과를 내걸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쇠말뚝, 민족정기 압살 의도”
영화 모티브지만 현재도 진위 논란」
쇠말뚝으로 민족정기를 누르려 했다는 기사는 200여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정조실록 1797년 6월 24일 첫 번째 기사입니다.
정조는 인재가 없음을 걱정하며 “명나라 초기(고려 공민왕 19년)에 (명나라) 도사 서사호가 단천(함경남도) 현덕산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다섯 개의 쇠말뚝을 박고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장 오래된 ‘쇠말뚝 침략론’이라고 알려졌습니다.
1995년에 기세를 탔던 ‘풍수 침략론’은 ‘토지 측량론’에 부닥쳤습니다. 일본은 1895년 200명 넘는 측량사를 보내고, 1912년에는 토지조사사업을 위한 삼각측량을 시작합니다.
일본은 정작 본토 측량은 소홀히 하고 한국·대만·만주 등에서는 열을 올릴 정도로 측량은 침략의 필수조건이었습니다(한국지적학회지). 쇠말뚝이 발견된 지점을 보면
이런 ‘삼각측량’을 위해 표시목으로 박은 위치와 대부분 일치한다는 게 ‘토지 측량론자’들의 주장입니다. 한 시사잡지엔 “측량을 위해 산 정상 등에 삼각점을 설치했다”는 당시 측량 기사의 증언도 나옵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한 기제인지, 영화 ‘파묘’에서 이렇게 대화가 짧게 오갑니다. “(쇠말뚝은) 토지측량용이라고 했잖아. 99%가 가짜잖아.”(영근-유해진) “그럼 1%는?”(상덕-최민식)
영화 속 최민식과 유해진은 쇠말뚝을 찾습니다.
북위 38.3417도, 동경 128.3189도입니다. 한반도의 허리이자, 휴전선에 막혀 남쪽에서 갈 수 있는 백두대간의 최북단입니다. 현행 교과서대로라면, 태백산맥이라고도 부르는 곳입니다.
태백산맥·소백산맥·차령산맥 등 산맥 이름은 20세기초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지질학상으로 분류해 붙였습니다. 줄기상으로 분류한 대간·정맥 등과 다릅니다.
우리 풍수는 이 줄기에 정기가 서려 있다고 봅니다.
정말 쇠말뚝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혈’에 박혔을까요. 아니면 구석구석 침탈을 하기 위한 측량용이었을까요. 한 풍수지리학자는 “쇠말뚝이 문제라면, 현재 산속의 송전탑과 전봇대는 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다른 학자는 “뽑았다고 하는 일제의 쇠말뚝 길이가 1m가 채 되지 않는데, 혈맥을 누르려면 2m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묘’는 연휴가 지나면 관객 500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 재현 감독은
“반일은 안 도드라지게 하려 했다”고 밝혔지만, 역풍도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3·1절이 다시 지났습니다. 좋든 싫든, 크든 작든 일본의 그림자가 아직도 어른거립니다.
중앙SUNDAY 김 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진보 진영의 논조 - '히, 스토리']영화 '파묘'보다 더 기겁할만한 일제의 만행들...
지명 바꾸고, 쇠말뚝 박고... <파묘> 가 상기시킨 역사적 사실들...
영화 <파묘>는 일제가 박아둔 쇠말뚝 자리에 일본 요괴인 오니가 살고 있고,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친일파 조상을 묻은 후손들의 비극을 다룬다. 사무라이 투구를 입은 그 오니는 자신이 봉건제후인 다이묘였다며,
자기는 원래 남산신궁으로 갈 몸이었는데 엉뚱하게 이곳에 있게 됐다고 불평한다.
이 오니가 있는 곳에 '대표적 친일파'인 자기 조상을 묻은 일로 인해 박지용(김재철 분)의 집안은 아기가 생명의 위험을 겪는 등의 불행을 겪는다. 신녀 이화림(김고은 분), 지관 김상덕(최민식 분),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분),
법사 윤봉길(이도현 분)은 쇠말뚝이 박힌 줄도 모르고 박지용 아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며 굿과 파묘를 진행한다. 그랬다가 죽을 고비를 겪는 것은 물론이고 예측불허의 상황들로 고생한다.
'쇠말뚝'의 원래 의도...
일제는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풍수학적으로 한국 땅의 기운을 꺾을 목적'이라고 표방하면서 그렇게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1910년부터 시작된 토지조사사업이 그 명분이었다.
삼각 측량을 위한 삼각점으로 쓰겠다며 그것을 박았다.
삼각 측량은 예컨대, 정면에 있는 나무의 높이를 직접 재지 않고, 자기 발끝(제1점)과 나무 밑동(제2점)까지의 거리, 자기 발끝과 나무 꼭대기(제3점)까지의 각도를 토대로 나무 높이를 재는 것이다.
이런 측량에 쓰이는 표식이라고 해서 삼각점으로 불렸다.
일본이 쇠말뚝을 박은 것은 단순히 토지 조사만 하고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인들의 땅을 빼앗는 게 실제 목적이었다. 풍수학적인 목적보다 훨씬 위험한 목적으로 쇠말뚝을 박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국인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저항 방식 중 하나는 쇠말뚝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토지조사사업 중인 1914년 6월 17~21일의 헌병대 회의를 토대로 작성된 '삼각점표 및 표석의 보관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에서 이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2006년에 한국 학회지인 <측량과 지적> 제3호에 실린 운노 후쿠쥬 메이지대학 교수의 '한국 측도사업과 조선 민중의 저항'에 인용된 이 문서에는 "근래 삼각점 점표와 표석을 훼손하는 자가 격증하였다"는 문구가 있다.
이 문건은 "미신에 의한 인위적 훼손"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풍수적인 이유 때문에 쇠말뚝을 뽑는 한국인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명당이라고 생각하는 땅에 쇠말뚝이 박히는 사례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토지를 측량해 땅을 빼앗을 목적과 더불어, 풍수학적으로 한국을 억누를 의도도 있다고 인식됐기에 쇠말뚝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명을 바꾼 일제의 속내...
일본은 지면에만 쇠말뚝을 박은 게 아니었다. 땅과 관련된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도 그것을 박았다. 한국의 지명을 바꿔 일본의 혼을 불어넣는 방법이 그중 하나다.
경복궁 서쪽에 인왕산이 있다.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주산(主山)으로 삼으려 했다가 정도전의 반대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산은 음력으로 세종 15년 7월 9일 자(양력 1433.7.25) <세종실록> 등에는 '임금 왕'이 들어간 인왕산(仁王山)으로 표기돼 있다. 국권침탈 6개월 전에 발행된 1910년 2월 19일 자 <대한매일신보>에도 마찬가지다.
이랬던 것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1912년 3월 7일 자 <매일신보>에는 인왕(旺)산으로 나타난다. '왕성할 왕'으로 바뀐 것이다.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王臨里)도 일제 때 왕림(旺林)리로 개칭됐다. 경기도 의왕시(義王市)도 이 시기에는 의왕(儀旺)으로 불렸다. 경기도 포천시의 왕방산(王方山)도 왕(旺)방산으로 바뀌었다.
왕(旺)은 뜻 자체는 좋지만, 일(日)과 왕(王)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쓰임이 있는 글자다.
왕방산이 포함된 포천·동두천·연천 지역 신문인 2012년 3월 23일 자 <경기북부타임즈>에 실린 '본래의 지명을 되찾아 민족정기를 바로잡자'라는 사설은 이 글자와 관련해
"일왕을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은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분개했다. 백제 도읍인 한성이란 지명에는 소서노와 온조를 비롯한 백제 건국 주역들의 정신이 묻어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대 한국인들이 사용한 한(韓)은 유목제국의 '칸'이나 한(汗)처럼 군주의 칭호였다고 말한다. 한성이 '한의 도읍', '칸의 도읍'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웅대한 의미를 담은 한성이란 명칭도 일제 때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일제가 한국의 혼과 역사가 묻은 지명들을 바꾼 것은 정신적 의미의 쇠말뚝을 박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기를 꺾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1930년 2월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작성한 비밀 문건인 '전라남도 광주에서의 내선(內鮮)인 학생투쟁 사건의 진상과 조선 내 학교들에 미친 영향'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른바 내지인과 조선인 학생의 싸움에서 발단돼
전국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에 관한 이 문건을 분석한 정근하 조선대 연구교수의 논문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조선 폄하: 학무국의 극비 보고서를 중심으로'(2014년 <한국동북아논총> 제73호)는 이런 설명을 한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전라남도 광주를 대표하는 무등산(無等山)을 '머리가 없는 산: 무두산(無頭山)'으로 지명을 날조하여 이 지역에서는 우두머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문자적인 대못을 박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모체였던 학생조직 성진회(醒進會)는 '비린내가 퍼져나가는 모임: 성진회(腥進會)'로 표기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풍수 침략을 감행하였다."
각성해서 전진하겠다고 붙인 학생 조직의 명칭을 위와 같이 총독부가 임의로 바꿔 부르는 일도 있었다. 무등산은 무두산으로 바꿔 불렀다.
광주 청년·학생들의 기를 꺾을 목적으로 이런 명칭까지 생각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이 문서를 공개하지 못했다. 만약 공개됐다면 1980년 5월이 아니라 1930년 5월이 역사에 더 강하게 기억됐을 수도 있다.
정신적 의미의 '파묘'가 필요한 때...
일제는 쇠말뚝을 박거나 지명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신사들을 통해서도 한국의 기운을 억누르려 했다. 이를 위해 <파묘>의 오니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되는 신들을 조선 땅에 끌어들였다.
광복절 특집 기사인 1970년 8월 19일 자 <조선일보> 3면 좌상단에 설명됐듯이, 일제 패망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에 총독부는 '조선신궁을 비롯한 전국 신궁·신사에서 승신식을 거행한다'는 방안을 채택했다.
일본 신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의식을 거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해방의 열기를 활용해 신궁·신사를 공격할 수 있으므로 신들부터 미리 철수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때까지 일제가 자국의 신들을 불러들여 한국을 억누른다는 발상을 갖고 식민통치를 진행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묘>의 일본 오니는 자기는 남산신궁으로 갈 몸이었는데 속아서 이곳에 오게 됐다고 푸념했다. 총독부의 위 조치를 듣지 못해 한국에 홀로 잔존한 패잔병 신(神)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패잔병들이 아직도 한국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은 패잔병답지 않게 지배자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다. 해방 80년이 다 되도록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 영향 하에 억눌려 지내는 것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그 지배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묘>는 신녀·지관·장의사·법사가 합력해 일본 신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싸움은 이들만 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해야 할 일이다. 일제 신령들을 파내는 정신적 의미의 '파묘'는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조장한 지금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도 긴요하다.
오마이뉴스 김 종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