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 - 앞으로 11일(10.2~10.12)간 수석 재산관리 집사님이 '민족대명절 추석연휴' 부재중인 관계로 대표이사님의 주요 저장된 글은 주요 블로그/SNS 대리 관리인(이 글의 주요 공유기인 대표이사님의 비지니스폰도 보유중...) GI 인터넷(홍보)팀장인 제가 올릴께요^^
그나마 강 하나씨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조 승연씨는 고려 명재상의 충신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이번 캐스팅은 저같으면 안 맡습니다... 막판에 자살은 정말로 아니였고요^^ 그냥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말입니다...
약간 코믹 사극인데, 정말로 안어울렸고요^^
지난 여름 넷플릭스 "폭삭 속았수다"의 아이유씨 이상으로 소녀시대 윤아씨의 연기력은 잘 보았고요^^ 눈과 귀가 즐거웠었다는 평가를 합니다... 주요 서류철을 보면서 본 기억이 많은데, 정말로 많이 웃었네요^^
이번주내내 이 재명 대통령의 "냉장고를 부탁해" 예능 촬영/방영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주요 모질이들 "국민의짐" 당직자들의 한심한 작태를 언급하면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고요...
전통을 도외시하는 세계화(우리나라는 친미화나 토착왜구화)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사회 혼탁과 우리 민족의 전통을 말살시키는 것이라는 것만 분명히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폭군의 셰프"는 잘 보았고요...
여담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세계는 주요 남자들이 지배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결국 여자들이 지배하죠^^ 그런 차원에서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옆에 '팜므파탈'격의 영부인이 존재하면 그 나라는 전국민이 피해를 보는 나라가 망한다는 겁니다...
연산군때의 숙원 장 녹수와 숙종때의 희빈 장씨등 두 장씨가 나오는 드라마/영화만 보면 김 건희같은 근본도 모르는 여자가 국정농단을 해 나라가 망할 뻔한 아찔한 생각을 하게 되고, 지난달 9월에도 다시한번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상모질이 윤씨도 일단 여자를 잘못 만난 겁니다...
강성 진보주의자로서 제가 볼때는 말입니다...

tvN ‘폭군의 셰프’.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이 재명, 출마 출사표 던졌네요^^ 저는 "태정태세문단세~"가 생각나데요^^ 숙종/경종에 이어 영조/정조가 생각났고요... 실용주의라... 탕평이 우선돼야
https://samsongeko1.tistory.com/14078
중모질이 오 세훈은 불출마 선언... 하모질이 한 덕수 차출론...?? 여권은 그냥 대선후보 내지마라... 오늘은 고 김 대중 전대통령을 숙종에 고 노 무현 대통령을 경종에 비유해보자...
그 경종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았던 조선시대 최장수 통치 무수리 아들 출신의 영조가 되려나 아님 바로 실학구시의 그 실학사상을 계승한 정조가 되려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국민통합과 대협치를 이룰 탕평책을 우선시한 영조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바로 아무도 안 믿는 경제성장의 실용주의 사상부터 들이미네요...
하여튼 난 고려 현종이후의 부국강병의 그 100세 치세를 기다린다... 아래 대표적인 왕관련 영화는 어느 블로거(Bloger)의 글에 제가 첨부한 겁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왕과 관련하여 말입니다... 틈틈히 생각나시면 보시고요... 여하튼 조만간 우리도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흥선대원군과 강조를... 아니 고려시대 중랑장 후손인 충무공 이 순신이상으로 고려시대 양 규 장군과 강 감찬 장군을 알아야... 국짐은 정당해산만이 답.
https://samsongeko1.tistory.com/13286
혈맹(?) 미국 이상으로 왕서방 중국(그 동북공정부터 백두산까지... 이들의 주요 역사 왜곡 문제는 내 통일후에 집중 성토한다... 사실 만주는 원래 고구려 땅이며 한반도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이곳도 한민족이 주인이였던 우리 땅... 그러나 아직은 참는다... 분단된 국가의 남한인으로서... 내가 중국 사대주의자라는 일부 비판이 있는데 아님을 강조한다.)도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 재명 대표의 인식은 옳으며 우리와 (양안)대만문제가 뭔 상관인가.... 주변 4대강국은 중립으로 다스려야 한다... 강력한 1억명 내수 경제 체제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북한도 전쟁이 아니고 평화로 자꾸 유도하여 결국 내부 분열에 의한 점진적 통일 방향으로 가야한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근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의 인구 2500만명과 재외동포까지 합쳐 1억명은 있어야 우리는 부국강병의 강대국으로 올라설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기본적인 외교는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주변 4대강국을 우리의 입맛대로 조절하는 중립국 입장으로 기여코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남한의 소멸론이 부각되는 현 시점에서도 그렇고 가까운 미래 보호 무역주의 심화와 신냉전에 따른 자국 중심주의의 폐쇄경제가 대세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외교정책의 방향은 이것이다... 가까운 미래 북한은 이렇게 예상하고 있는 중이다... 3대째 독재체제로 움직이고 있는 김 정은이 마지막이다... 이 양반 사후전 분명히 내부 붕괴가 일어나고 우린 급속하게 진행될 서독의 동독 흡수합병식 통일에 이제부터라도 대비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양키 코쟁이들부터 왕서방들이 보일 거부 반응과 일본과 러시아의 방해공작을 막아낼 수 있는 외교/국방 정책을 지금부터 수립해야 하며, 미국한테서는 정말로 전작권부터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한반도 남한의 자주적 방위를 방위비나 띁어내 자국 방산업체들의 글로벌 장악을 유지하려는 미국 주도하에 냅둬야 하는가... 양키 코쟁이들한테 언제 돌려줄것이냐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우린 전작권도 필요하며 우주방위청 이상으로 주변 4강국을 다스릴 항공모함 도입도 필요하며 필요시에는 파키스탄도 가지고 있는 핵무장도 원한다... 이 아침 강력한 민족주의자이자 강성 진보주의자인 게코(Gekko)의 대북관과 외교관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부합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있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재명이라... 이 양반 뒤에 반드시 내 외교(국방)관에 부합하는 강력하고 진정한 진보성향의 인물이 나올 것이다... 그것도 전라도에서...
조만간 대종영할 예정인데, 난 아직도 강조의 마지막 일성이 메아리친다... "(야만인이 아니고) 난 고려의 신하다..." 이번에 말이다. 이 성계와 강조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204
조선조 사림화(이들은 영정조(고 김 대중, 고 노무현) 치세기간동안 실사구시의 실학을 죽였고 그 동학혁명도 잊었고, 반일항쟁투쟁도 잊었으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도 잃어버린 역적들)돼버린 이 수박(비명이든 친문이든)들을 다 걸려내야 민주당원및 대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현재 전 민주당원들과 지지 국민들은 이 재명 대표하의 강력한 친정체제를 원합니다... 수렴청정한 천추태후나 김 치양같은 간신들에 휘둘려 무능력했던 목종이 아니고 강력한 군주 현종을 원하고요... 전 그 강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국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3각균형하의 자주적 나라를 건설하게 한 외교/국방의 강 감찬, 호락호락하지 않던 지방의 있는 자들이였던 호족들을 통제하는 5도양계의 전국적인 체계를 만들도록 도운 행정/지방제도의 김 은부같은 명신을 얻어 고려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고, 원성황후/원혜황후가 낳은 아들들로 덕종, 정종, 문종의 100년 치세를 열었듯이, 이 재명 사단안에서 없는 자들인 중하위층및 서민들과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중심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자주적 부국강병을 이루게 해줄 이들이 이 고 김 대중, 고 노 무현에 이은 이 재명 사단안에서, 강력한 진보/민주 성향의 대통령들과 명신들이 줄줄히 나오기를 원하고요... 이 재명을 반병신의 목종을 만들려는 모든 이들은 현재 강조(이 원종)역을 하고 있는 게코(Gekko)가 철퇴를 계속 내릴 것입니다... 제 생각에 좀 심하면 현종의 충신중의 하나인 친종장군 지 채문식으로 합니다... 평양성을 거란에 바친 간신 서경부윤을 철퇴로 죽이거나 발해 후손 대도수 장군을 사지로 몬 동북면도순검사 탁 사정을 죽이려한거나 왕을 겁박하고 반란을 일으킨 고려 중후반 대몽 항쟁에서 무능력의 대명사인 최씨 무신정권의 고조할아버지격인 최 질과 그 모사꾼 개경부윤의 목을 베듯이 저도 자객으로 기능하고자 합니다...

구정인사차 GI 큰 자본주 사무실을 예방했는데, 전 한과세트가 아니고 책을 구정선물로 주시네요^^ 역사관이 같은 제 블로그를 꾸준히 보고는 계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13
정통 진보주의자로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만약 한반도 통일을 고구려가 했다면, 역성혁명인 위화도 회군없이 고려가 800년이상 한반도를 지배했다면 역사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https://samsongeko1.tistory.com/12933
아따아~~~ 역시 고구려 후예들답군...!!! 내가 볼땐 미국과 우리가 똥줄타게 생겼다...
http://blog.daum.net/samsongeko/7951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폭군의 셰프>
"왕을 영아처럼...", 연산군 주물렀던 장 녹수의 실체...

후궁 장녹수는 폭군 연산군을 조종했다.
tvN 퓨전사극 <폭군의 셰프>에서 장녹수를 연상시키는 인물인 강목주(강한나 분)는 연희군(이채민 분)의 마음을 묶어놓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실제의 장녹수는 그런 단계를 뛰어넘었다.
지난달 31일 <폭군의 셰프> 제4회에서 강목주는 갑작스레 연희군의 곁을 독차지한 요리사 연지영(임윤아 분)을 몰아낼 목적으로 대왕대비(서이숙 분)를 움직인다.
연지영은 타임슬립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건너갔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의문과 경계의 대상이다. 강목주는 대왕대비가 주최하는 요리 경연에서 연지영이 탈락해 처벌을 받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연지영이 뜻밖에도 대왕대비의 추억이 깃든 시금치 된장국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강목주의 작전은 실패한다. 제3자를 개입시켜 연지영과 연산군을 떼어놓으려 했던 시도는 보기 좋게 무산됐다.
연산군의 심리 주물렀던 장 녹수...
실제 기록상의 장녹수는 제3자를 움직일 것도 없이 연산군의 심리를 자기 마음대로 주물렀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작동했다.
음력으로 연산군 8년 11월 25일자(양력 1502.12.24.) <연산군일기>는 "왕을 조롱하는 것이 마치 젖먹이를 대하듯 하고, 희롱하고 모욕하는 것이 마치 노예를 대하듯 한다"고 기술했다.
이 기록에 사용된 젖먹이의 원문은 영아(嬰兒)다. 유아를 다루듯이 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영아를 다루듯이 연산군을 조종했던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폭군의 셰프> 속의 강목주는 상당히 점잖은 편이다.
장녹수는 연산군의 5촌 당숙인 제안대군의 노비였다. 제안대군의 노비와 결혼해 자녀를 낳은 장녹수는 운평(運平)과 흥청의 단계를 밟아 연산군을 만났다.
연산군은 관청에 속한 공노비 중에서 춤과 음악을 잘하는 기생들을 운평으로 선발했다.
사노비가 아니라 국가 소속의 공노비였던 장녹수는 이런 운평의 일원으로 선발됐다. 연산군은 운평 중의 일부를 흥청으로 선발하고 궁궐로 불러들였다. 장녹수는 이 단계도 통과했다.
장녹수는 노비이자 기생이고 연산군은 군주였지만, 이런 신분 차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이 사이에서는 장녹수의 개인적 특성이 훨씬 강하게 작용했다.
우선, 장녹수는 노래 실력이 대단했다. 위 <연산군일기>는 "노래를 잘해서 입술과 치아를 움직이지 않고도 그 소리가 청량하고 들을 만하다"고 평했다.
이 기록을 남긴 사관(士官)은 장녹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사관이 "들을 만하다"는 평을 남겼다. 장녹수의 팬이 기록을 남겼다면 훨씬 나은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인생 경험도 풍부했다.
1502년에 나온 위 기록은 장녹수가 "30여 세"였다고 말한다. 연산군은 1476년 생이다. 그래서 1502년에 26세였다. 이해에 장녹수가 서른을 넘겼다고 했으니, 연산군보다 대여섯 살 혹은 그 이상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연산군이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위 기록은 "(장녹수는) 나이는 30여 세이지만 외모는 16세 아이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굴은 중인(中人)을 넘지 못했다"고 말한다.
<광해군일기>의 사관은 "용모가 피지 않았다"는 표현을 사용해 광해군의 최측근인 상궁 김개시의 외모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연산군일기>의 사관은 계층적 관점을 담아 "중인을 넘지 못했다"는 표현을 썼다.
사관들은 군주의 남자 측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록에 잘 남기지 않는 반면, 군주의 여성 측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겼다. 장녹수는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결혼 경험도 풍부했다.
"남편에게 시집가는 게 절제가 없었다"고 위의 <연산군일기>는 말한다.
이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장녹수는 결혼을 꽤 많이 했었다. 인생 경험과 더불어 이런 요인도 장녹수가 연산군을 가스라이팅하게 만든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연산군은 갓난아기 때 헤어진 친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장녹수는 모성애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 연산군을 애인처럼 다루기도 하고 젖먹이나 노비처럼 다루기도 했다.
연산군의 정서를 교묘히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연산군은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도 장녹수만 보면 금세 기뻐하며 웃었다고 한다.
연산군 12년 9월 2일자(1506.9.18.)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매료된 시점은 음력으로 임술년 이후다. 임술년 1월 1일인 양력 1502년 2월 7일 이후였던 것이다.
1502년에 나온 위의 <연산군일기>에는 장녹수가 종4품 후궁인 숙원으로 표기돼 있다. 한편, 연산군 9년 12월 24일자(1504.1.11.) <연산군일기>는 이날 그가 종3품 숙용으로 승진했다고 알려준다.
1502년에 종4품이 되고 1504년 연초에 종3품이 됐던 것이다.
국정에 깊이 개입했던 장 녹수...
장녹수는 이런 승승장구를 거치면서 국정에도 깊이 개입했다. 조정의 인사 문제나 포상·징계·재판 등에도 끼어들었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왕족의 청탁을 받은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연산군 8년 8월 30일자(1502.9.30.) <연산군일기>는 왕실 종친인 남천군 이쟁이 노비 송사에서 승소하기 위해 장녹수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알려준다.
장녹수가 임금의 관심을 끈 것은 1502년 2월 7일 이후이고, 남천군의 뇌물공여가 실록에 기록된 것은 그해 9월이다. 장녹수의 권력장악 속도가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장녹수는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세상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휘둘렀다.
궁궐 밖에 마련된 자기 주택을 확장할 목적으로 그 주변의 민가들을 모조리 철거했다. 또 정부 소유의 선박을 이용해 평안도 미곡 7천 석을 거래했다. 대중의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국가의 공공기물을 임의로 사용했던 것이다.
장녹수가 연산군을 만난 것은 연산군이 왕이 된 지 6년 뒤다.
이후 연산군은 중종반정이라는 쿠데타로 실각했다. 그 기간동안 장녹수는 연산군의 폭정을 거들면서 자신의 탐욕을 충족했다. 연산군 정권을 침몰시키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던 것이다.
예능인의 길을 걷기보다는 권력자가 되어 세상을 억압하는 쪽을 택한 장녹수는 결국 연산군 정권과 함께 몰락을 맞이했다.
중종이 즉위한 첫날의 상황을 기록한 중종 1년 9월 2일자(1506.9.18) <중종실록>은 장녹수가 "난(亂)의 근본"으로 지목돼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알려준다.
오마이뉴스 김 종성 기자

‘폭군의 셰프’ 실제 모델 연산군이 탐닉했던 보양식은?

<폭군의 셰프>에서 폭군 연희군은 조선시대 연산군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연희군은 절대미각을 소유한 미식가로 그려지는데 실제 연산군도 그랬을까. 방탕하고 포악했으며 여색을 밝힌 것으로 많은 일화와 기록을 남긴 그는 음식에 대해 탐욕스러웠다.
임금의 식탁엔 일반 서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산해진미가 차려지게 마련인데 그는 구하기 힘들고 귀한 식재료에 집착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귀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권력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좋아했던 것으로 실록에 언급되어 있는 대표적인 식재료는 ‘녹미’, 즉 사슴꼬리다. 사슴꼬리와 사슴혀를 진상하도록 하라는 기록이 연산군일기 곳곳에 나와 있다.
그가 워낙 즐겨 먹었던 탓에 전국 팔도에서 구해도 물량이 달렸고, 관찰사가 국문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연산군일기 59권(연산 11년)에는 사슴 꼬리 한개의 값이 베 30필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북경에 가는 사신에게는 수박을 구해오도록 했는데, 이를 잘못됐다고 간언했던 사헌부 관리 김 천령은 사후에 부관참시를 당하기도 했다.
주색잡기에 빠졌던 그가 특히 탐닉했던 것은 보양식이었다. 병 없이 늙은 흰 말이 양기를 돋우는데 좋다해서 이를 즐겨 먹었으며 귀뚜라미, 잠자리, 베짱이, 두꺼비, 메뚜기 따위를 잡아 바치도록 했다.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한방내과 정 지천 교수가 쓴
<남성보감>에 따르면 잠자리와 베짱이는 정력제로 활용되어 왔다고 쓰고 있다. 음식사가인 주 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쓴 <조선의 미식가들>에 언급된 15인의 조선시대 인물 중 왕으로는 영조가 유일하다.
83세까지 살았던 ‘장수왕’은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졌지만 탐식이 아닌 음식을 절제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다양한 차와 죽을 즐겼던 그가 입맛 없을 때 찾았던 별미는 고추장이다.
특히 순창 출신인 조 종부의 집에서 만든 고추장을 좋아했다. 영조는 정치적으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조종부를 괘씸하게 여겼지만 그 집의 장은 거부할 수 없었다.
경향신문 박 경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