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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millionaire

집권여당관계자 정 청래, 김 병기... 국무위원 김 민석, 구 윤철... 심지어 이 재명 대통령까지 필독했으면 하는 글이다... 본인들이 루이14세나 그 하수인들이 아니라고요??

현재 대한민국은 프랑스를

 

부국강병의 절대적 왕정체계의 부국으로 만들었던 명재상 콜베르나 삼국시대 촉한을 취하고 나라의 틀을 만들어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와 자웅을 겨루었던 제갈공명이 필요하다...

 

하부 인프라스트럭처가 취약한 현재의 사변같은 뻥튀기 국정과제 123개가 아니고 말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거의 불가능한 성장이 아니고 회복을 위한 강력한 조세개혁부터라고 했다아...

 

뭘 제대로 알고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이 진보정권 5년동안 콜베르처럼 귀족을 규제하고 대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우린 프랑스처럼 국가부채위기와 빈민및 없는 자들의 프랑스 대혁명같은 파국을 맞는다...

 

민주독재 19년을 진정으로 원하고 민중의 삶과 민생고를 해결하는 기본적 복지 국가 완성만이 현재의 글로벌 관세전쟁 파고와 최악의 내수 경기 동향을 극복하는 절대적 정책이다...

 

이 완벽한 회복없이는 성장은 없다...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을 해소하는 소득재분배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일련의 정책없이 허약한 국가구조하에서의 성장이라는 것은 허울좋은 사변이라는 생각뿐이다...

 

월가의 금리인하에 기댄 지수상의 상승...

좋다... 자산효과...

 

하지만 여전히 하위 40%는 이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전국민 60%는 공매도가 뭔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말이다... 주식으로 중산층이 됐다거나 이걸로 부자됐다는 사람보다는

 

이건 있는 자들의 놀이터라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아니 서민들이 아니 민중들이 더 많다... 난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진보정권의 허울좋은 사변보다는 기본적 복지 국가 건설에 더 관심이 많다...

 

아니 당장 필요한건 이번주에 지급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의 연말연시 3차 준비와 내년도 지방선거 전후의 4차 계획이다... 내 이야기했다... 허울좋은 사변으로 국민들 기만하지말고 기업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성장을 위한 회복 발판을 쌓은데 매진한다...

 

하여튼 영민한 왕을 만났는데, 회복을 위한 세수확보를 할 명재상들이 안보이네... 무슨 자금으로 123대 국정과제를 시행하겠다는건지 기본적 복지국가 건설은 요원하고요...

 

대미투자 480조...?? 기가 차다...

 

우리경제도 죽을판인데, 그곳의 고용, 소득, 소비를 위한 480조원 투자... 정말이다... 양키 코쟁이들 아가리에 들어갈 돈...  차라리 전국민들에게 나눠준다...

 

단 한푼도 투자하지말고

관세 차라리 맞는다...

 

기업들의 별도 대미투자 1500불 투자... 야하.... 돈많아...

 

나라 곳간이 비여 있는데, 여전히 각종 감면/공제/면세로 나라 돈이나 뜯어가는 재벌 대기업들 골드칼라 노조원들 살리려고 나라 운영하냐... 그들이 알아서 하라고 그래...

 

1500억불은 간섭안한다... 내수도 죽을판인데, 하지 말라고 안할 놈들도 아니고 이거말고 480조원은 40분기 내내 13조원씩 국내 "민생회복지원금"으로 풀어라...

 

난 수출 포기하고 내수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콜베르도 없는데 이제 궁전도 짓고, 전쟁도 하고, 돈 좀 쓰고 살자.” 1700년 루이 14세의 초상화.

 

 

“전하, 회계 공부 시간입니다.” 콜베르 초상화.

 

 

“푸케, 당장 회계장부를 내놓지 못할까.”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다르타냥 동상.

 

 

“나라의 도둑놈들을 처단하자.”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대혁명을 모티브로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해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루이14세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베르사유에서 의전을 묘사한 장 레옹 제롬의 그림.

 

 

“엄마, 저 왕 안 하면 안 돼요?” 어린 시절의 루이14세. 그는 4세에 즉위해 수 많은 정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왕이 아닌 우리 귀족을 위한 프랑스를 만들자.” 프롱드의 난을 묘사한 그림.

 

 

“친정을 선언하노라. ”1655년 프롱드의 난을 진압한 승리자 루이14세. 신으로 묘사된 모습이다.

 

 

“제가 나라를 부강하게 해주겠습니다. ” 콜베르 초상화.

 

 

“그래 콜베르, 회계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네.” 복식부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카 파치올리의 초상화.

 

 

“재산을 이렇게나 늘려 놓다니...기특한지고” 콜베르를 발탁한 쥘 마자랭.

 

 

“전하 그 돈은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옵니다.” 니콜라 푸케 초상화.

 

 

보 르 비콩트 성은 니콜라 푸케의 소유로, 왕궁보다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과시적 행태가 그의 실각을 블렀다.

 

 

“콜베르와 공부할 시간이군.” 젊은 군주 루이14세.

 

 

“국가 운영은 자고로 콜베르처럼 해야하네.” 콜베르를 극찬한 애덤 스미스.

 

 

“돈 그렇게 쓰면 거지꼴을 못 면해요.” 콜베르.

 

 

콜베르가 루이 14세에게 보낸 서신. 베르사유 궁을 확장하는 것에 적대감을 표현했다.

 

 

루이 14세 손자 필리프가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선포되는 장면. 무수한 전쟁과 빚더미를 안은 끝에 얻은 성취였다.

 

 

“그래, 나도 콜베르처럼 미국을 운영하겠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파리 생 외스타슈 교회에 잠든 콜베르. 그의 죽음은 프랑스의 붕괴와도 같았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프랑스 루이14세 당시의 명재상 콜베르처럼 "새는 세금을 막는다."인데 경제부총리는 이 재명 대통령의 전도사 역할에 충실하네요... 마음에 안 듬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4575

 

"암튼 이번에 "민생회복지원금"을 결정하면서 말이다...

 

없는 자들이 정말로 자존심 상했을것 같다. 내가 낸 세금을 최악의 내수 경기 상황에 소비쿠폰으로 받는데, 있는 것들의 지적질이 장난이 아니였다... 받기 싫으면 국가에 기부하면 될 것을 말이다...

 

장사치들 채무탕감은 더하고...

 

온갖 반대 논리에 나라가 망한다느니 베네수엘라 꼴 난다느니, 난 대한민국의 0.1%의 고소득자이면서 부자 감세에는 반대하는 강성 진보주의자다... 요즘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내년부터 없앤다고 난리다...

 

결국 포퓰리즘때문에

 

중산층및 중상위층내지 있는 것들이 없는 자들때문에 피해를 본다느니 각종 말말말들이 SNS에 쏱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가 극단적 이기주의와 이권 카르텔에 의해 움직이는 전체를 거미줄처럼 보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여담인데 말이다...

 

채무/빛내서 분수를 모르고 과한 부동산을 사거나 채무/빛내서 주식투자를 하거나 신용카드로 생활하는 이들을 정상적인 경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이런 가족/친구,지인/고객들은 좋게 보지 않는다...

 

일본 쪽바리들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에 지랄같은 성문화를 전파시킨 오염이상으로 양키 코쟁이들이 조선인들을 오염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있고... 이래서 내가 극우 성향의 친일/극우 성향의 친미주의자들을 싫어한다...

 

채무/빛내는게 능력이라는 보는 이런 잘못된 사조, 우리도 미국꼴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경계해야할 1호다...

 

조만간 18세까지 지급하는 기본소득적 아동수당의 필요성과 지난 세기부터 존치되어온 각종 공제/감면/면세 조세제도의 대개혁없이는 더불어 사는 세상과 기본적 복지 국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종합분석 글을 올리겠다...

 

현재 게코연구소(GI:Gekko Institude) 산하 사회경제조사부 연구원들과 최종 보고서 검토중이다...

 

하여튼 만약에 중하위층 서민 근로자들과 중소상공인들및 자영업자 40%만이라도 기본소득을 정책화한다면 난리나겠다... 1회성 민생회복지원금 지원이 국가가 들썩거릴 정도로 1년이상 소모성 논쟁이 벌어지니 말이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상모질이 윤씨 끌어내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고서야 2~3년간의 걸친 대논쟁이 마무리되고 다음주에 시행된다... 1997년 IMF 경제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내수 경기 상황이고만 말이다...

 

있는 것들, 골드칼라들, 적당히 작작좀 해라...

 

아무리 없다지만 없는 자들의 자존심은 건드는게 아니다... 니들은 없더라도 살만하겠지만 이 양반들한테는 1개월을 견딜 수 있는 피같은 세금을 환급받는거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국가가 국민이 어려울때 안도와주면 언제 도와주냐...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그래...

 

신정부가 재테크 중심 증권투자, 그 주식투자실전으로 코스피 5000p/코스닥 3000p 시대를 열려고 하는데, 그깟 몇 백만원이 문제냐... 이 돈은 결국 국민들의 기본적 복지 국가 재원으로 쓰이고...

 

니들이 수억원 연봉에도 이기주의로 애하나 안 낳을때 애 낳은 부모들의 자녀양육의 아동수당으로 쓰이고 니들이 차지하고 내놓지 않아 실업자 신세인 2030세대들의 청년기본소득으로 쓰일 것이다... 난 분명히 이야기했다...

 

20세기부터 존치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들및 있는 것들, 골드칼라들에게 부당하게 제공되고 있는 각종 공제/감면/공제를 대대적으로 손봐야한다고 말이다... 아이히, 날 국세청장으로 임명해주면 안되나...

 

1년내내 전국 5개 지방국체청들과 철야를 해서라도 1960년대이후 재벌 대기업들과 있는 것들과 주요 대기업 노조 골드칼라들이 착취하고 있는 국가 재정을 녹먹는 각종 공제/감면/면세 제도를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하여...

 

연 100조원이상을 수거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이번에 내란당을 지지한 40%를 제대로 손봐줘야 한다...

 

이들의 자산및 소득이 더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이것들이 각종 SNS에서 온갖 반칙/특권의식/갑질로 국가를 좀 먹고 있을때 없는 자들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진보층 소속 국민들에게도 당부한다... 누군 없애고 누군 부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들부터 있는 자들까지, 대기업 골드칼라부터 대다수 국민들이 반칙/특권의식/갑질로 살아왔다는 생각이다... 이 조세구조조정이 없는한 성장을 위한 돈도 복지를 위한 돈도 나올데가 없다...

 

상황을 분명히 인식한다...

 

우리는 더 내려놓고, 정부의 5000p 시대 발표 자산효과에 기대야한다고... 수백만원을 내려놓고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 국가구조개혁에 동참하시기를 바란다고... 이 글에 공감하는 분들은 그나마 국가관이 있는 양반이다...

 

있는 자중의 한 명인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때는

시급한 사안이다..."

 

 

지난 어떤 글의 위 코멘트는 안하고 엄한 내용만 이야기하네요... 전국민의 안살림을 책임져야할 경제부총리가 말이다... 난 다음주 2차 민생회복지원금말고는 관심이 없다...

 

아래 주요 사항은 해봐야 아는 것이고, 현재는 내수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인다... 모래성 위에 쌓은 건물은 언제든지 거품이고 무너진다. 국가구조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이 재명 대통령은 믿는데, 정 청래, 김 병기부터 김 민석부터 구 윤철등 집권여당 주요 관계자들과 행정공무원들은 아직 못 믿겠다고, 내란당 '국민의짐'의 경제정책과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특히 "없는 자들..." 입장에서

우린 뭐 없냐??

 

한번이 아니고 연말에 다시 3차 내년도 지방선거 전후로 4차등 민생회복지원금 28조원 더 풀라고 했다아... 중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 120만명 폐업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새로운 정권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전국민들한테 지급하고 있는 각종 세원들 공제/감면/면제의 조세개혁부터다... 이곳에서 정의와 공정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돈 나올데가 없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4132

 

성장을 먼저 하고 회복을 할 것인가... 성장이 불가능하니 회복을 먼저하고 성장 발판을 마련해야 하나...

 

이제 한 분기 "민생회복지원금"으로는 안된다. 재정의 통폐합후 하위 40%는 이제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다... 있는 것들을 더 쥐어짜는 "부자증세" 강화로 없는 자들부터 살려야 한다...

 

새로운 정권은 이것만이 답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국가 부채도 더 늘려야 한다... 있는 자들 30%들에게 부탁한다... 우리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할 비상상황이라고...

 

제갈공명의 삼책론으로 제시한다...

 

일단 1회성 "민생회복지원금"으로는 이제는 안된다... 국가 부채가 좀 늘더래도 국채발행으로 1년간 52조원...

 

분기당 13조원씩의 전국민(단 이 부분에서 반대, 나를 포함한 있는 자들 30%는 제외하고 그 금액은 하위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자영업자 두툼한 지원에 쓴다.) 민생회복지원금으로 돈부터 돌게한다...

 

이것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둘째로 새로운 정부는 있는 것들의 부동산/법인세 증세를 바로 추진하고 세정부분에서의 각종 누수된 부분의 세정개혁을 추진해 각종 세원에서 빠져나가는 공제/감면/면세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

 

정부 재원을 확충하고 하위 40%만의 기본소득이라도 추진한다... 이것만이 민생을 살리는 길이다... 상모질이 윤씨가 했던 연금/의료/노동개혁도 필요하다...

 

이걸하면서 동시에 비대해진 정부 부분(최근 머스크의 공무원 해고를 보면서 조만간 한국도 필요한 상황임을 인식...)을 통폐합하고 방만한 재정운용을 조정하고 여기에서 성장에 필요한 30%의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없는 자들 지원하면서 빵꾸난 금액을 말이다...

 

세번째로 미국와 중국과의 이 관세전쟁에서 수출 5대 산업 다 살아나지 못한다... 전략 산업 반도체와 자동차/철강, 제약/바이오만이 의미 있고 나머진 대규모 기업구조조정과 통폐합을 다시 해야한다...

 

2차전지/전기차, 정유/화학은 버려야 하고 유통도 더 줄여야 한다... 다 살리려다 다 죽는다... 오늘 삼성SDI 어닝 쇼크와 바닥에서 헤메고 있는 SK그룹의 2차전지산업을 보면서 2차전기/전기차도 중국 못 이긴다.

 

버려야 한다.. 저유가에 헤매고 있는 정유/석유화학도 끝났다고 본다... 좁은 내수시장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유통산업도 다시한번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하위층내지 서민들과 중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에게도 당부한다...

 

이 내수 경기 침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최대한 정부의 실업자/자영업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받아내 생존하면서 조기에 자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동시다발적인 전국적 폐업은 이제 피할 길이 없을듯하다...

 

그나마 있는 없는 자들을 위한 "기본소득"적 성격이 있는 '근로장려금'까지 건드네... 오 세훈이의 '디딤돌 소득'도 그렇고 있는 것들 부자증세 없는 어떠한 개편도 반대한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4015

 

현재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일본 쪽바리들의 "잃어버린 10년" 진입 초기에 그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사업말고는 실업률 하향 유지가 안되는 혁신이 사라진 한국 경제/산업/금융 상황에서 근로의욕 고취를 하고 싶어도 할데도 없다...

 

있는 것들인 재벌 대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개편에 있는 국내 공장도 해외로 이전하고 양키 코쟁이들부 터 그 땅의 고용과 소비를 유지시키면 시켰지 외국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없는 마당에 뭘로 근로 의욕을 고취시킬 것인가..??

 

그 사회보장정책및 근로장려금을 줄여 다 공공근로사업으로 돌릴 심산인가... 그럼 일시적으로 고용률은 늘어나고 실업률은 낮아지겠네... 내 설파했다... 현재 국내는 북한과의 통일로 대규모 토건사업이 일어나거나

 

어제 미얀마 대지진처럼 이웃(?) 일본에 대지진이 나 일국토가 초토화되는 토건사업 수주가 없는 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로가 독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우크라이나 재건 같은 상황에서 보듯이 말이다...

 

이것도 실질적으로 국내 고용과 소비하고는 상관없는 것이고 말이다...

정부,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있는 것들을 더 쥐어 짜라... 법인세 해외소득에서 유출되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각종 공제/면제로 새나가고 있는 법인세/종합소득세/부동산세가 수십조원이다... 시급해 해결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코뭍은 돈, 갈취하냐...

 

그것도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없는 자들의 근로장려금을 건드냐고...

 

에라이 모질이들아, 허기사 지들과 관련이 있는 세금을 건들지는 못하겠지, 한국은 이 "오블리주 리블리제"가 없는 있는 것들의 각종 반칙/특권/갑질에 죽어가는 사회다...

 

이것을 대개혁하는 없는 자들을 위한 진보정권이 출현하지 않는 이상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것만 분명히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중도보수... 결국 있는 자들 눈치보면서 없는 자들은 더 참으라는 이야기고 말이다...

 

이 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신 잘 생각해라... 당신의 최근 행보는 전체 77.7% 없는 자들의 의심을 받고 있다... 대권도전에서 처신 잘한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말이다...

 

어설픈 투자를 늘리고 고융을 늘리겠다는 말은 하지마야... 아무도 믿지 않는다... 너든 국민의짐이야기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무엇이 가능한지를 말이다...

 

핵심은 현재 전국민들의 근로의욕은 욱일승천중이다...

 

근데 수많은 청년들이 비자발적 실업자에 이생망이라고 부르짓고 결혼을 포기하면서 인구감소로 국가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고, 노인들 빈곤층 세계 1위에 죽기전까지 저임금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데 사회복지정책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줄이자고...

내 말대로 해야...

 

전국민 상속세를 90% 징수해 소득재분배에 대한 대개혁을 시도하고 사회 재편을 더 늦기전에 한다... 이렇게가다가는 있는 것들도 못산다... 이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있는 자들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난 2040/50년전에 죽겠지만 더 험한 꼴-1920년대부터 없는 자들의 폭동, 각 종 혁명이 결국 세계2차대전으로 이르렀음을 잊지말고, 여기에서 극우가 그 전에 태동했고-보기전에 죽고 싶다...

 

우리만 그런것도 아니고 현 글로벌 상황은 세계3차대전 아니면 해결안되는 상황으로 진입중이다...

 

항시 밑에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사신다... 그들과의 공존과 평화없이는 우리 중산층도 중상위층도 못산다는 것을 명심한다... 그것이 기부든 후원이든 각종 정책사항에서의 동조든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보신다... 그럼 된다...

 

현재 또라이 트럼프도 이것을 무시하고 있다...

 

지들만 잘산다... 그간에는 무시를 받았단다...?? 지랄하네... 그간에도 미국만 잘살았다.. 흥청망청 전세계 제품과 서비스를 써가면서 말이다... 근데 이제는 저축과 근면으로 살아온 중국등 아시아가 내놔야 한다네...

 

진짜로 지랄을 한다...

 

정책은 오 세훈이껀데, 어째 "기본소득" 이 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꺼를 베꼈다는 생각이 드냐... 내가 볼때는 넌 따아악 보건복지부 장관이 맞다.. 대통령감은 아니고 말이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990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기초생활수급자중 일할 수 있는 2종(1종은 거동도 불편한 이들이라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로 국가에서 먹여 살림^^)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자활근로대상자라하여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사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안다...

 

이것을 유사하게 변형한 것 같은데, 취지에는 동감한다...

 

현재 오 세훈이의 의도는 국민의짐 여권의 입장인 것이다... 두텁게 지원하자는 것이 아니고 간신히 현재까지 올려놓은 없는 자들을 위한 각종 복지 정책을 통폐합하여 줄이자는 것이다...

 

디딤돌 소득...??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두텁게 지원하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일단 추경이나 야당과 합의해야...

 

그리고 민생회복지원금도 지급하고... 그리고나서 새로운 대통령하에서 기본소득정책을 전격 도입해야 한다고 동조하고... 그럼 이 재명 다음의 차기 대통령감으로 널 인정한다...

 

 

아래는 방금전에 주요 6개 SNS에 올린 코멘트입니다...

 

 

"오늘은 그 직접 개입형 과외서비스 이용자들인 부외계좌 고객들과의 추계운용 세번째 주간모임이 있는 날이라 전체회원들을 관리하는 총회장, 단톡방장, 모임총무님과 오전에 전화부터 했고요... 이번달 모임은 기존고객 60명과만 합니다... 현재 추계 신규고객 신청자만 33명이라 지지난주이후 개별 상견례를 장장 11일간에 걸처 끝냈고 오늘은 신규고객들과 주요 관계자들과의 합동 상견례가 있는 날이고요~~^^ 오후 1시부터 식사겸 모임은 끝났고, 전 마지막에 잠시 들렸네요~~ 기존고객 60명들과의 세번째 모임은 이번주는 생략했고 이번주후반 로보티즈/로보스타로 중대박중이라 한달만에 분기 최소 투자수익률 +100%는 가능할듯요^^ 2차없이 합동 상견례는 끝났고요~~ 저도 이제 가족들과의 시간~~~^^ 게코(Gekko)"

 

 

[강 영운의 히코노미]王의 남자 죽고나니 돌변한 루이14세 스러진 절대왕정 남은건 나라 부채뿐...

 

 

그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 아름다운 여인들, 진귀한 동식물까지. 모든 것은 그의 소유여야 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궁전은 그의 치세를 찬양하는 신하들로 가득합니다.

 

측근의 부인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입니다. 지상에 만든 천국에서 그는 신과 다름없었습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태양왕' 루이 14세의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은 간단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루이 14세가 본인의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던 기반에는 나라 곳간을 가득 채운 훌륭한 신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르 그랑 콜베르(Le Grand Colbert)'. 루이 14세의 재무 총감인 '위대한 콜베르'였습니다.

 

루이 14세의 프랑스가 향락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유럽의 최강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콜베르의 회계적 지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통하는 베르사유 역시 콜베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요. 이 사내는 어떻게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만든 것이었을까요.

 

절대왕정의 초라한 시작...

 

"저는 정치가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오늘날 태양왕이자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통하는 루이 14세지만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아버지 루이 13세는 네 살에 불과한 루이 14세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건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프랑스. 어머니 안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의 섭정기(대리통치), 민중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결국 프롱드의 난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왕권 약화를 기회 삼아 귀족들이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파리를 봉쇄한 반란군을 피해 루이는 어린 나이부터 피난을 다녀야만 하는 처지였지요.

 

어린 루이는 어려서부터 권력의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프롱드의 난은 가까스로 진압했지만, 루이 14세의 마음속에는 큰 결기가 섰습니다.

 

"어떻게든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겠어.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1651년 열세 살의 루이 14세가 '친정'을 선언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더 이상 어머니 안 도트리슈의 치마폭에 싸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자랭 재상과 통치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인재를 등용하면서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길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콜베르와의 운명적 만남

 

"이 남자를 써보시지요."

 

마자랭 재상이 루이 14세를 알현할 때 한 남자를 대동합니다. 장바티스트 콜베르라는 이름의 남성. 마자랭의 최측근으로 그에게 정치적·경제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브레인'이었습니다.

 

마자랭이 루이 14세의 '두뇌'였다면, 마자랭에겐 콜베르라는 조언자가 있었습니다. 루이 14세의 국정 운영에 콜베르가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었지요. 잠깐 콜베르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콜베르는 프랑스 샹파뉴(영어로 샴페인) 주도 랭스의 금융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무역에 필요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이었습니다.

 

10대 중반부터 회계사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그들에게 경제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금융국가인 이탈리아 은행가 집안 마스크라니가의 리옹 사무실을 그가 첫 직장으로 삼은 이유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이름난 재무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중세 상인들의 상업 매뉴얼인 아르스 메르카토리아(Ars Mercatoria)를 완전히 체화한 인물이 콜베르였습니다. 회계의 중요성이 무시되던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콜베르의 눈은 궁을 향해 있었습니다.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꿈은 프랑스의 부국. 1639년 그가 육군성에 들어간 계기였습니다. 군대의 병력과 보급품을 모두 정리해 재정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이 특출난 젊은이를 눈여겨보던 사람. 프랑스의 수뇌부 마자랭 재상이었습니다. 마자랭은 콜베르를 자신의 핵심 인재로 활용합니다.

 

그에겐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관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콜베르는 지식은 있었으나 재산이 미미했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1658년 마자랭의 재산은 800만리브르(중세 프랑스의 화폐 단위)였지만 콜베르는 3년 만에 이를 3500만리브르로 불려 놓습니다.

 

명재상 마자랭이 죽은 뒤 루이 14세의 옆에는 콜베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귀족이 아닌 회계사가 왕의 측근이 된 건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콜베르의 프랑스 대개혁...

 

"프랑스에는 도둑이 너무 많습니다."

 

회계사의 눈으로 프랑스의 재정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재정 구조부터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매의 눈' 콜베르는 진단합니다. 프랑스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이를 몰래 빼내 가는 도둑이 많은 것이라고.

 

큰 도둑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재무대신이었던 니콜라 푸케. 전임 재상인 마자랭과 함께 루이 14세를 보필한 인물. 왕실 금고에서 사부작사부작 돈을 빼돌린 덕에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릴 수 있었지요.

 

프롱드의 난으로 프랑스 왕실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조차 그의 가문은 부유해져만 갔습니다. 돈이 많다고 눈치가 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1661년 8월 푸케는 루이 14세를 자신의 성으로 초청해 화려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불꽃놀이, 발레쇼, 진귀한 음식들까지. 왕의 궁전보다 더 큰 스케일에 루이 14세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왕은 콜베르에게 곁눈질을 보냅니다. "푸케의 뒷조사를 시작하게."

 

파티가 끝나고 한 달 뒤 콜베르가 왕의 총사들을 데리고 한 성에 나타납니다. 푸케의 성인 '보르비콩트'였습니다. 화려한 축제를 벌였던 그곳이었습니다. 총사들은 왕의 명임을 밝히고, 푸케의 성을 수색합니다.

 

그가 어떻게 프랑스의 국고를 빼돌렸는지 적혀 있는 회계장부를 발견합니다. 이 압수수색을 이끈 총사가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다르타냥'이었습니다.

 

다르타냥과 짝을 이룬 콜베르는 이제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콜베르를 앞세워 회계를 무기로 정적을 제거했던 셈이지요.

 

국정의 원리에 회계를 도입한 콜베르...

 

"회계는 국정의 기본이어야 합니다."

 

'회계사' 콜베르는 프랑스 최고지도자이자 루이 14세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국가 전반의 운영에 회계가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국왕에게도 회계의 기본을 교육했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지키고 운용하는 것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콜베르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회계 장부를 보고합니다. 루이 14세는 그가 보고하는 부기를 이해하고 좋아했지요.

 

콜베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프랑스 군주는 '회계의 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국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콜베르는 명재상이었습니다.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마련해 국가 수입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그였습니다. 관세를 신설하고, 토지세도 현실에 맞게 조정되었습니다. 세금 징수원들에게 정확한 기록을 남길 것도 강조했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임의적 면제는 당연히 폐지됩니다.

 

니콜라 푸케를 축출한 지 5년 만에 프랑스의 재정은 흑자를 기록합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콜베르가 국고 세입의 징수와 지출에 질서를 도입했다"고 상찬했을 정도입니다.

 

긴축에 지쳐가는 루이14세...

 

"언제까지 자린고비로 살아야 하나."

 

루이 14세와 콜베르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유한 재정 상태임에도 콜베르가 언제나 루이 14세의 결정에 어깃장을 놨기 때문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확장에도, 신흥 강호 네덜란드와의 전쟁에도 콜베르는 회계장부를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부국 프랑스를 망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하늘이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었을까요. 아님 저주를 내린 것이었을까요. 1683년 8월 콜베르가 숨을 거뒀습니다.

 

신장에서 커다란 돌이 요관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이 14세는 그의 죽음을 표면적으로 애달파하면서도 이제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막을 자가 없다는 생각에 미소 지었습니다.

 

콜베르라는 개인의 죽음은 프랑스 재정의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국가는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었습니다.

 

고삐 풀린 말이 되어버린 루이 14세...

 

"짐은 유럽의 지배자가 되고 싶다."

 

콜베르라는 고삐가 사라지자 태양왕의 야심은 더욱더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부르봉 왕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점점 성장하는 개신교 국가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루이 14세는 독실한 가톨릭이기 때문이었지요. 퐁텐블로 칙령을 통해 국내 개신교 박해를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영국·합스부르크 제국은 이에 맞서 동맹을 결성합니다. 유럽의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루이 14세를 가만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9년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국력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개신교 박해로 프랑스를 떠난 사람들이 90만명에 달했습니다.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프랑스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콜베르는 생전에 종교 탄압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콜베르의 죽음 이후 프랑스가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재정적 부담은 결국 프랑스를 무너뜨립니다.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이 터져 부르봉 왕조를 몰락시킵니다.

 

'르 그랑 콜베르'가 죽은 지 100년이 조금 지난 뒤였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콜베르의 경제학 정신...

 

오늘날 경제학의 관점에서 '콜베르주의'는 조악한 구석이 많습니다.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나친 국가적 개입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외국 수입을 제한하면서 자국 소비자 이익을 해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콜베르의 정신은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튼튼한 국가 재정이 부국의 기본임을 입증해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열렬히 콜베르를 존경했습니다. "프랑스가 번영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위대한 콜베르'의 능력과 불굴의 노력 덕분이다."

 

해밀턴 역시 콜베르처럼 중앙집권적인 재무시스템만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국' 미국의 기원에 콜베르의 정신이 녹아 있던 셈입니다.

 

2024년 8월 대한민국과 가계 채무가 합계 3000조원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저는 콜베르를 떠올렸습니다. 재정의 튼튼함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태양왕 앞에서 설파하는 그의 모습을. 방만한 재정의 위대한 반대자를...

 

매일경제 강 영운 기자

 

 

[다시한번 더-히코노미]신하의 아내들까지 탐한 절대권력... 그가 향락에 빠지도록 판 깔아준 이 남자...

 

 

그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 아름다운 여인들, 진귀한 동식물까지. 모든 것은 그의 소유여야 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궁전에는 그의 치세를 찬양하는 신하들로 가득합니다.

 

측근의 부인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입니다. 지상에 만든 천국에서 그는 신과 다름 없었습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태양왕’ 루이14세의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은 간단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루이14세가 본인의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던 기반에는 나라 곳간을 가득 채운 훌륭한 신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르 그랑 콜베르(Le Grand Colbert)’. 루이 14세의 재무 총감인 ‘위대한 콜베르’였습니다.

 

루이14세의 프랑스가 향락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유럽의 최강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콜베르의 회계적 지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통하는 베르사유 역시 콜베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테지요. 이 사내는 어떻게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만든 것이었을까요.

 

절대왕정의 초라한 시작...

 

“저는 정치가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오늘날 태양왕이자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통하는 루이14세지만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아버지 루이13세는 네살에 불과한 루이14세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건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프랑스. 어머니 안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의 섭정기(대리통치), 민중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결국 프롱드의 난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왕권 약화를 기회삼아 귀족들이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파리를 봉쇄한 반란군을 피해 루이는 어린 나이부터 피난하러 다녀야만 하는 처지였지요.

 

어린 루이는 어려서부터 권력의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프롱드의 난은 가까스로 진압했지만, 루이14세의 마음속에는 큰 결기가 섰습니다. “어떻게든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겠어.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1651년 13살의 루이14세가 ‘친정’을 선언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더 이상 어머니 안 도트리슈의 치마폭에 싸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자랭 재상과 통치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인재를 등용하면서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길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콜베르와의 운명적 만남...

 

“이 남자를 써보시지요.”

 

마자랭 재상이 루이14세를 알현할 때, 한 남자를 대동합니다. 장바티스트 콜베르라는 이름의 남성. 마자랭의 최측근으로 그에게 정치적·경제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브레인’이었습니다.

 

마자랭이 루이14세의 ‘두뇌’였다면, 콜베르에겐 마자랭이라는 조언자가 있었습니다. 루이14세의 국정운영에 콜베르가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었지요. 잠깐 콜베르의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콜베르는 프랑스 샹파뉴(영어로 샴페인)의 주도 랭스의 금융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무역에 필요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이었습니다.

 

10대 중반부터 회계사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그들에게 경제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금융국가인 이탈리아의 은행가 집안 마스크라니가의 리옹 사무실을 그가 첫 직장으로 삼은 이유였습니다.

 

‘중세의 월스트리트’ 글로벌 금융기업의 지점이라고 해야할까요. 근무하면서 그는 회계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문서 처리, 법적 절차, 행정력까지.

 

그는 당대의 이름난 재무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중세 상인들의 상업 메뉴얼인 아르스 메르카토리아(Ars Mercatoria)를 완전히 체화한 인물이 콜베르였습니다. 회계의 중요성이 무시되던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콜베르는 관직의 꿈을 품었습니다.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꿈은 프랑스의 부국. 1639년 그가 육군성에 들어간 계기였습니다. 군대의 병력과 보급품을 모두 정리해 재정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이 특출난 젊은이를 눈여겨 보던 사람. 바로 프랑스의 수뇌부 마자랭 재상이었습니다.

 

마자랭은 콜베르를 자신의 핵심 인재로 활용합니다. 그에겐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관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콜베르는 지식은 있었으나 재산이 미미했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1658년 마자랭의 재산은 800만 리브르(중세 프랑스의 화폐단위)였지만 콜베르는 3년만에 이를 3500만 리브르로 불려 놓습니다. 마자랭이 콜베르를 루이 14세에게 소개해준 배경이지요.

 

명재상 마자랭이 죽은 뒤, 루이14세의 옆에는 콜베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귀족이 아닌 회계사가 왕의 측근이 된 건 프랑스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지요.

 

콜베르의 프랑스 대개혁...

 

“프랑스에는 도둑이 너무 많습니다.”

 

회계사의 눈으로 프랑스의 재정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재정 구조부터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매의 눈’ 콜베르는 진단합니다. 프랑스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이를 몰래 빼내 가는 도둑이 많은 것이라고.

 

큰 도둑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재무대신이었던 니콜라 푸케. 전임 재상인 마자랭과 함께 루이14세를 보필한 인물.

 

왕실 금고에서 사부작사부작 돈을 빼돌린 덕에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릴 수 있었지요. 프롱드의 난으로 프랑스 왕실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조차 그의 가문은 부유해져만 갔습니다.

 

돈 많다고, 눈치가 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1661년 8월 니콜라 푸케는 루이 14세를 자신의 성으로 초청해 화려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불꽃놀이, 발레쇼, 진귀한 음식들까지, 왕의 궁전보다 더 큰 스케일에 루이14세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이때의 질투심으로 베르사유궁을 크게 키웠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왕은 콜베르에게 곁눈질을 보냅니다.

 

“푸케의 뒷조사를 시작하게.”

 

파티가 끝나고 한달 뒤, 콜베르가 왕의 총사들을 데리고 한 성에 나타납니다. 푸케의 성인 ‘보 르 비콩트’였습니다. 화려한 축제를 벌였던 그곳이었습니다.

 

총사들은 왕의 명임을 밝히고, 니콜라 푸케의 성을 수색합니다. 그가 어떻게 프랑스의 국고를 빼돌렸는지 적혀있는 회계장부를 발견합니다. 니콜라 푸케는 더 이상 프랑스의 재무대신이 아닌, 국가 반역자였습니다.

 

이 압수수색을 이끈 총사가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다르타냥’이었습니다. 다르타냥과 짝을 이룬 콜베르는 이제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루이14세는 콜베르를 앞세워 회계를 무기로 정적을 제거했던 셈이지요.

 

국정의 원리에 회계를 도입한 콜베르...

 

“회계는 국정의 기본이어야 합니다.”

 

‘회계사’ 콜베르는 프랑스의 최고 지도자이자 루이14세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국가 전반의 운영에 회계가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국왕에게도 회계의 기본을 교육했습니다.

 

루이14세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프랑스 재무에 관한 역사적 회고록’도 집필합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지키고 운용하는 것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 프랑스 왕들은 오만한 신하들에게 모두 재정을 맡기는 바람에 결국 ‘암군’으로 전락했다는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어렸을 힘 쎈 귀족들의 반란에 치를 떤 루이14세는 누구보다 콜베르의 말을 경청했지요. 루이14세는 보물로 장식된 회계 원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국가 재정을 살폈습니다.

 

콜베르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회계 장부를 보고합니다. 루이14세는 그가 보고하는 부기를 이해하고 좋아했지요. 콜베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프랑스의 군주는 ‘회계의 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국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콜베르는 명재상이었습니다.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마련해 국가 수입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그였습니다.

 

관세를 신설하고, 토지세도 현실에 맞게 조정되었습니다.

 

세금 징수원들에게 정확한 기록을 남길 것도 강조했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임의적 면제는 당연히 폐지됩니다. 니콜라 푸케를 축출한지 5년만에 프랑스의 재정은 흑자를 기록합니다.

 

부채 이자는 5200만 리브르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중상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리옹에 실크 제조업체를 육성하고, 유럽의 여러 장인들을 프랑스로 불렀습니다.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이13세 때의 병약한 프랑스는 이제 없었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콜베르가 국고 세입의 징수와 지출에 질서를 도입했다”고 상찬했을 정도입니다.

 

긴축에 지쳐가는 루이14세와 그걸 지켜보는 콜베르...

 

“언제까지 자린고비로 살아야 한단 말이냐.”

 

루이14세와 콜베르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유한 재정 상태임에도 콜베르가 언제나 루이14세의 결정에 어깃장을 놨기 때문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확장에도, 신흥 강호 네덜란드와의 전쟁에도 콜베르는 회계장부를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부국 프랑스를 망쳐놓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하늘이 루이14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었을까요. 아님 저주를 내린 것이었을까요. 1683년 8월, 콜베르가 숨을 거뒀습니다.

 

신장에서 커다란 돌이 요관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이14세는 그의 죽음을 표면적으로 애달파하면서도, 이제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막을 자가 없다는 생각에 미소 지었습니다.

 

콜베르에 이어 재무총감의 자리에는 클로드 르 펠레티에가 차지합니다.

 

콜베르의 오랜 라이벌 집안이었습니다. 권력을 분산시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루이14세의 조치였지요. 콜베르 집안은 신임 재무총감 클로드에게 재무 정보와 관련된 정보를 인계하지 않았습니다.

 

클로드는 “콜베르 집안이 어떤 정보도 넘기지 않아 프랑스 재정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입니다.

 

회계는 권력이었고, 절대로 양도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지요. 콜베르라는 개인의 죽음은, 프랑스 재정의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국가는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었습니다.

 

고삐 뿔린 말이 되어버린 루이14세...

 

“짐은 유럽의 지배자가 되고 싶다.”

 

콜베르라는 고삐가 사라지자, 태양왕의 야심은 더욱 더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부르봉 왕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점점 성장하는 개신교 국가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루이14세는 독실한 가톨릭이기 때문이었지요. 퐁텐블로 칙령을 통해 국내 개신교 박해를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영국·합스부르크 제국은 이에 맞서 동맹을 결성합니다. 유럽의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루이14세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9년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쟁은 승패 없이 지지부진. 막대한 빚만 남았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2세가 후계 없이 죽으면서 이를 둘러싼 전쟁이 또 다시 이어집니다. 결국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지만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나 컸습니다.

 

프랑스의 국력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개신교 박해로 프랑스를 떠난 사람들이 90만명에 달했습니다.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프랑스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콜베르는 생전에 종교 탄압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콜베르의 죽음 이후 프랑스가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재정적 부담은 결국 프랑스를 무너뜨립니다.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이 터져 부르봉 왕조를 몰락시킵니다.

 

‘르 그랑 콜베르’가 죽은지 100년이 조금 지난 뒤였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콜베르의 경제학 정신...

 

오늘날 경제학의 관점에서 ‘콜베르주의’는 조악한 구석이 많습니다.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나친 국가적 개입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외국 수입을 제한하면서 자국 소비자 이익을 해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콜베르의 정신은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튼튼한 국가 재정이 부국의 기본임을 입증해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열렬히 콜베르를 존경했습니다. “프랑스가 번영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위대한 콜베르’의 능력과 불굴의 노력 덕분이다.”

 

해밀턴 역시 콜베르처럼 중앙집권적인 재무시스템만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국’ 미국의 기원에 콜베르의 정신이 녹아있던 셈입니다.

 

2024년 8월 대한민국과 가계 채무가 합계 3000조원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저는 콜베르를 떠올렸습니다. 재정의 튼튼함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태양왕 앞에서도 설파하는 그의 모습을....

 

위대한 회계, 방만한 재정의 반대자는 번영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줄요약>

 

ㅇ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14세가 향락을 즐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튼튼한 국가 재정이 있었다.

ㅇ이 국가 재정을 설계한 이가 회계사 콜베르였다.

ㅇ콜베르는 ‘다르타냥’과 함께 국가 재정을 좀먹는 이들을 적발하고, 세금제도를 개편했다.

ㅇ콜베르가 사망한지 100년이 조금 지나서 부르봉 왕조는 방만한 국가 운영으로 무너졌다.

 

<참고문헌>

 

ㅇ제이컵 솔,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메멘토, 2016년

ㅇ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 김영사, 2016년

 

매일경제 강 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