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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millionaire

좀 심하게 혹평한다. 현재 상모질이 윤씨이하 노타리들을 제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혁신 아이콘이 사라져버린 재벌가 현재 2세/3세들이 전면에서 내려와야 한국 경제가 산다..

 

지난달도 외국인들이 역대급으로 한국 증시에서 순매도를 보였다... 이것을 어거지로 주요 연기금등 쌈지돈같은 국민들의 노후대책 자금으로 틀어막고 있는 중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난 진짜로 모르겠다... 한국 경제는 견실하다...??

 

그 박 정희 아젠다를 불러온다고 한국 경제/산업/금융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낼꺼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 이 병철, 정 주영을 지나 이 건희나 정 몽구까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현재 10대 재벌가 2세/3세들의 경영 행태를 보면 대기업 운영 흉내만 내고 있는 중이다...

 

그 할아버지/아버지들의 용기와 혁신의 과단성은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말이다... 이 경영행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난 가까운 미래 한국 경제/산업/금융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혁신이 규제개혁을 통해서

민간기업에 제대로 전달되려면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을 과단성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이 재용은 삼성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가야 하며, 대다수 재벌가들의 모질이들도 전부 전문경영인 특히나 40대 위주로 전문경영인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투자/경영 행태로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강력한 금산분리 정책으로 그룹에서 금융업을 전문금융인들한테 돌리고 그 재벌가조차 시장의 엄정한 평가와 주주들의 견제를 받아야 이들이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

 

난 이야기했다... 이 재벌 개혁과 금산분리 정책으로 기업들을 코너로 몬다...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수익도 없으며, 그 안에서는 어떠한 혁신도 나오지 않는다... 2030세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혁신으로 이끌고 한국 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산업, 심지어 금융조차 미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영미식 투자은행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언제나 공산주의 중국과 같은 혁신적 IT 스타트업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난 또 이야기했다... 2차전지/전기차도 반도체도 중국한테 결국 경쟁력 따라 잡힌다... 이런 무사안일의 경영과 소유와 경영이 분리가 안돼 있는 상태로는 말이다...

 

젊은 경영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라도 후대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곳이 재벌가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혁신적인 유전자를 보유한 새로운 전문경영인들이 나오지 않는이상 우리의 경쟁력은 안봐도 비디오다...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나올 수도 있다...

 

영약한 군주이상으로 영악한 대상인이 필요한데, 한국은 현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 정치권이며 이 경제를 전혀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 노타리들을 제거하고 영도력 있는 군주를 세울려고 우리는 다음달 대선을 치룬다...

 

문제는 그 경제의 부활도 이 무한경쟁의 글로벌 경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민간 유전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재벌 2세/3세들중 일부 22.3%는 잘하고 있는 양반도 있다... 근데 못하고 있는 그 77.7%도 제거해야 한다...

 

이 참에 말이다... 특히 이 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물러나라...

내 볼때 넌 경영자로서는 소질이 없다...

 

아래 글을 읽고 말이다...

 

난 현재 한국 정치와 경제에 필요한 것은 영악한 '나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이 재명이를 민다... 문제는 기업에서는 누가 그레샴같은 역할을 할 것인가이다...

 

 

19세기 지도. 붉은색이 대영제국의 영토였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던 런던증권거래소. 이곳에는 그레샴의 얼이 서려 있다.

 

 

“무역은 세상의 모든 걸 말해준다, 토마스.” 토마스 그레샴의 삼촌 존은 런던 시장까지 오른 걸출한 경제인이었다.

 

 

그레샴가문의 고향인 노퍽 지방의 표지판. 상단에 메뚜기 상이 있다.

 

 

“폐허에서 돈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 큰 부를 이루는 법이라오.” 헨리 8세에 의해 폐허가 된 잉글랜드 요크 세인트 메리 수도원.

 

 

“사랑? 웃기지 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토마스 그레샴 결혼 당시 초상화. 오른쪽 위에는 아내 앤의 이니셜(A)과 그레샴의 이니셜(G)이 새겨져 있다.

 

 

“이 결혼, 진짜 맞는 걸까.” 앤 퍼넬리.

 

 

“붕어빵에 붕어 없는데, 은화엔 왜 은이 있어야 하지?” 헨리 8세의 초상화.

 

 

헨리 8세 시절 은화. 형편없는 은 함유량으로 악명 높았다.

 

 

“토마스 아저씨만 믿습니다.” 에드워드 6세의 초상화.

 

 

“그레샴이 왕 때문에 고생이네.” 16세기 최고의 도시 중 하나였던 앤트워프의 풍경. 무역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지면서 생긴 변화였다.

 

 

“개신교도 중 유일하게 쓸만한 놈인가.” 메리 1세.

 

 

“우리 가족이 성향은 다 달라도 그레샴은 다 같이 좋아한다네. ”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 튜더가문을 묘사한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 시절 금화. 그녀와 그레샴의 첫 개혁은 화폐의 복원이었다.

 

 

“아으 추워, 스페인 놈들 때문에 못 살겠다. 런던으로 가서 장사하세.” 1590년 앤트워프. 루카스 반 발켄보르흐의 작품.

 

 

런던증권거래소 오른쪽 위에 그레샴의 상징인 황금메뚜기가 보인다.

 

 

런던 롬바르드 스트리트 은행가 골목에 새겨진 그레샴 가문의 황금 메뚜기. 위의 이니셜 TG는 토마스 그레샴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목 낚시로 유명한 히코노미 강의를 한다네 그려.” 그레샴 컬리지 런던.

 

 

“화폐는 국가의 얼굴이라네.” 토마스 그레샴 초상화.

 

 

토마스 그레샴 흉상.

 

 

이번 상법개정안이 진정으로 구현되려면 말이다... 전체기업에 거수기 이사들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하지 이런 개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냐... 전문경영자들의 반역이 필요하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4031

 

주요 모질이 재벌 2세/3세에 대하여 회사및 주주이익에 반하는 경영이 이루어질때 따박따박 대들 수 있는 의식개혁 말입니다... 한국 경제/산업/금융에서 혁신이 사라진 이유중의 하나는 이 거수기 이사들의 재벌가 눈치보기에 있습니다...

 

지난달 수많은 주총에서도 여전히 주주들은 말을 안했으면 하는 눈치들이 많더군요... 전 이것 하나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주주 이익은 주가 상승이고, 회사 이익은 기업 성장입니다... 둘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주주보다는 전문경영인 대표와 이사의 역할이 중요하죠... 이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판단력이 흐리멍텅하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법이 할 수 있는게 없다고요...

 

전국투자클럽연합회(NICA) 회장내정자인 전 반대입니다... 이번 상법개정안은 말입니다... 특히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것도 반대... 비상장사들에서 비리가 더 많습니다. 

 

현재 재벌 대기업들의 비상장사들이 더 알짜들이 많습니다... 상장된 회사들은 투명하게 내놓을 수 밖에 없고 어쩔 수 없는 국민기업들이고 내놓아도 재벌가 대주주 입장에서 그들의 재산/돈과는 무관하고요...

 

제 말은 이번 상법 개정안의 노림수가 전체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최 태원이부터 반대하는 것이고, 비상장사들을 노리고 있다는 재벌가들의 생각에 있습니다... 이 비상장사에 가면 진짜로 월급만 따박따박 타먹는 거수기 이사들 많습니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 의무와 관련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383조3)'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충실 의무의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장했습니다. 이사가 경영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 내 일부 집단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해 온 시민단체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법 개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습니다.

 

그동안 기업이 알짜 사업을 물적분할하는 사례처럼 특정 주주에게만 유리한 경영의사결정에 대해 소액주주의 피해를 방지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계는 개정안에 강한 우려를 표시해 왔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 의사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는 일이 크게 늘어 적극적 경영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였습니다.

 

법안은 어떤 의사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아

 

회사를 상대로 한 주주의 소송이 남발될 수 있고, 우리 기업이 외국계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될 우려까지 있다는게 재계의 의견입니다.

 

정부 또한 재계의 입장을 수용해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했습니다.

 

정부는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사에 대한 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두 가지 쟁점이 있는거 같은데,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장하자는 문제와 전자 주주총회에 대한 것인데, 전자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재계말대로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있으며 둘째는 시민단체의 말대로 완전 대체하면 현장에서의 주주 질문권이 박탈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이것도 도입 반대입니다...

 

다만 전자 주주총회와 현장 주주총회를 동시에 개최한다면 찬성이고요... 이사의 충실 의무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다시 더 센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고요... 이사들의 경영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및 활동에서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명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벌 대기업들이 원하는대로 말입니다...

 

포지티브 방식이 있고 네거티브 방식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항만 빼고 다 된다는 논리과 구체적으로 어떤건 안되는다는 것중 하나를 선택해 명시적으로 제시해 단체소송및 외국 핫머니들의 투기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들의 말을 들어주돼 더불어민주당은 더욱 센 상법 개정안으로 마련하시고요... 디테일하게 제시된 구체적인 경영활동 제약사항을 제시해가면서요... 구체적인 명시화...

 

제 그룹 전체계열사도 그렇고 이번 상법개정안에 대다수 일반기업들은 관심 없습니다... 비리 저질르지 않고 경영활동 충실히 잘하고 있는 대다수 기업인들은 말입니다...

 

제 게코인터내셔널(GI)도 주요주주들 50명도 안되고요...

 

계열사들도 다들 비상장사라 주주 10명~30명 내외^^ 부럽네^^ 주요 비리들을 저지를 수 있는 상장 대기업들과 비상장 대기업들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상법 개정안 반대해 보려나...

 

 

4년간 기백조원을 증시에서 조달해놓고선 생색내기용 자사주 소각...?? 배당금을 열배이상 늘려라... 이것만이 진정한 한국 증시 기업 밸류 프로그램(저평가 해소) 지름길이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52

 

주요 혁신이 사라진 한국 증시에서 반도체/자동차/철강/화학/2차전지/전기차/제약/바이오/엔터테인먼트/게임등 암튼 주요 상장기업들의 최대 주주환원책은 시가배당률을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간 많이 개선되기는 했으나 국내 개인투자가들의 장기투자에 의한 자산형성에 증권투자가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우량 대기업들조차 단기투자의 단타화돼 주가의 하향 평준화되는 저평가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가배당률이 기업이 이룬 성과에 비해 턱없이 적기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재벌가들과 주요 대기업 오너들이 기업이익의 사내 유출을 최대한 막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누가 국내 증시의 미래 혁신을 믿고 장기투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내일 정부의 발표에서 기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뭔 놈의 상장지수펀드(ETF)는 그렇게 만들어내는지... 그간 만들어낸 우량기업 관련 ETF도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만...

 

최근 4년간 대규모로 발행된 유상증자 물량이 한국 증시의 진정한 저평가 요소고요... 코스피 달리 코스닥은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는 CB물량의 주식으로의 전환이 갈가먹고 있고요..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46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으로 기업 밸류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정책당국의 발표를 보면서 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등 지정학적인 리스크는 20세기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이였던 것은 맞는데, 21세기는 한국 주요 상장기업들이 살 주식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거북이처럼 증가하는 변한게 별로 없는데 각종 액면분할, 유무상증자로 시장에 널린게 주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물적/인적분할후 쪼개기 상장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에 물량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럼 절대로 주가는 오르지 못합니다... 수요가 급격히 늘지 않고 있는데 공급 과잉인 곳이 한국 증시라는 겁니다... 정책 당국은 액분을 불허하고요... 오히려 액면병합을 유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평가 요소를 해소할 수 있다는 역발상을 해야 합니다... 추가로 쪼개기 상장도 불허해야 합니다... 덤으로 애초에 가입한 시장에서의 이전등도 엄격한 원칙하에서 기업의 주 사업이 시장과 맞지 않다면 이것도 불허해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이며 애초에 가입한 시장에서의 이전을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해야 시장 안정성과 저평가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소견도 제시합니다...

 

 

[히코노미]“과부와 결혼합니다, 재산이 많거든요”... 이 남자의 노림수, 세계를 바꾸다...

 

 

슬픔도 세월 속에 풍화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다시 삶의 의지가 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지친 내 옆을 지켜주던, 위로를 건네주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생기고, 건실하기까지 한. 죽은 남편을 참 많이 닮은 남자. 어느 날 그가 건넨 꽃다발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결혼하자는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눈만을 그윽하게 쳐다봐 주던 새 남편. 결혼 후부터 그의 눈길은 자주 ‘장부’로 향했습니다.

 

전 남편이 모아놓은 재산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건 제가 아니었습니다. 재산이었습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행위가 그의 계산 속에서 이뤄지던 것이었습니다.

 

새 신부의 돈을 빼돌린 잔혹한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그레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이 남자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동시에 잉글랜드를 세계적인 국가로 만든 사내이기도 했습니다.

 

사생활에서도, 공인으로서도 계산과 실리에 밝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잔혹한 성정이 세계 경제를 이끈 동력이라는 역설. 오늘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잉글랜드의 메뚜기 ‘그레샴’

 

‘그레샴’. 1500년대, 잉글랜드 런던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무역인 집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작부터 전설이었습니다.

 

수백 년 전 한 마을에서 어떤 여인이 메뚜기가 크게 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한 고아가 버려진 채 울고 있었습니다. 그레샴 가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레샴이 ‘메뚜기’를 가문의 상징으로 삼은 이유였습니다.

 

그레샴의 메뚜기 소리는 잉글랜드 전역에 울렸습니다. 잉글랜드 섬유를 네덜란드에 수출하고, 그곳의 곡물을 수입해 부를 쌓으면서였습니다.

 

형 리처드와 동생 존은 이 부를 기반으로 런던 시장까지 올랐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의류 무역을 담당하는 상인을 ‘머서’(Mercer)라고 불렀는데, 그 최고봉에 있던 사람이 바로 리처드와 존 형제였습니다.

 

리처드가 1519년 아들을 낳았습니다. 토마스 그레샴이었습니다.

 

아버지 리처드와 삼촌 존이 일군 부 속에서 그는 상인 정신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물건이 다른 나라에서 더 큰 가치를 갖는다는 무역의 원리를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저녁에는 무역 회사에서 실무를 학습하는 일. 경제란 그의 핏속에서 흐르는 것이었고, 뼈에 각인된 것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24세부터는 그는 본격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에 뛰어듭니다.

 

위기 속에서도 부를 일구다...

 

잉글랜드 런던에서 네덜란드 앤트워프(현재는 벨기에 도시)까지. 그는 글로벌 노마드였습니다. 당시 앤트워프는 세계 최고의 무역도시이자, 금융 기법이 가장 발달한 도시. 오늘날 뉴욕에 버금가는 곳이었지요.

 

토마스 그레샴이 경제인으로 성장하기에 이만한 도시가 없었습니다. 그레샴은 세계가 작동하는 경제 원리를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는 엄청난 혼란기였습니다.

 

국왕 헨리 8세가 교황이 자신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라 전체의 국교를 바꾸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천년을 믿어 온 가톨릭을 억압하고, 개신교인 성공회를 새로운 국교로 바꾸는 대혼란. 헨리 8세는 가톨릭 교육의 산실이던 수도원까지 해체해 버립니다.

 

그레샴 가문은 위기에서 기회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폐지된 수도원의 토지를 사들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대혼란의 파고가 잠잠해지면 물밑에 숨어있던 대어(大漁)를 낚을 수 있음을. 예감은 적중합니다. 종교분쟁의 혼란이 잦아지자 땅값과 건물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과부와 결혼한 1등 신랑감...

 

“이 여인과 결혼하겠습니다.”

 

토마스 그레샴. 그의 나이 어느덧 24살이었습니다. 앤트워프와 런던을 왔다 갔다 하는 바쁜 삶. 아버지와 삼촌은 그에게 결혼을 권합니다. 애가 둘 딸린 과부 앤 퍼넬리였습니다.

 

남 부러운 것 없는 집안에서 훤칠한 아들을 과부에게 장가보내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앤 퍼넬리의 전 남편이 런던에서 알아주는 상인 윌리엄 리드였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이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재빠르게 앤과 결혼을 추진합니다. 그녀의 재산을 그레샴 가문의 사업 자금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레샴 가문에겐 결혼도 비즈니스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그레샴은 결혼을 철저히 사업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앤 퍼넬리와 아들 하나 낳은 뒤부터는 주로 앤트워프에 거주합니다. 새신부를 런던에 홀로 둔 채였습니다. 정부(情婦)를 두고 쾌락을 탐하기도 했습니다.

 

그레샴은 정부와의 사이에서 딸 앤 그레샴을 낳습니다. 또 다른 정부가 임신했을 때는 자신의 책임을 피하고자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버릴 정도로 나쁜 남자였습니다.

 

잉글랜드, 나쁜 돈의 나라...

 

잉글랜드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국왕 헨리 8세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궁전을 크게 세우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 여자가 가득한 파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왕실 재정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헨리 8세에게 매일같이 국가 재정 위기 보고서가 올라오는 나날. 그가 묘안을 떠올립니다.

 

화폐를 생산할 때 들어가는 은의 양을 줄이라는 것. 싸구려 금속을 섞어서 더 많은 은화를 생산해 왕실 빚을 갚자는 획기적인 ‘제안’(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이었습니다. 자신의 사치적 행위를 그만둘 생각이 없어서였습니다.

 

‘양화’(良貨·Good money) 대신 ‘악화’(惡貨·Bad money)를 만들자는 왕의 비밀스러운 주문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합니다. 파운드화에 담긴 은의 함량이 일 년 만에 92.5%에서 33%까지 줄어든 이유였습니다.

 

꼼수의 유효기간은 짧습니다. 악화를 만든 대가를 치를 시간이 찾아옵니다.

앤트워프 상인들이 누구입니까. 유럽 경제를 주무르는 대가들입니다. 잉글랜드 1파운드 은화의 실질 가치가 예전 1파운드와 같지 않다는 걸 재빠르게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앤트워프 상인은 잉글랜드 화폐를 거부합니다. 그 돈의 가치가 ‘쓰레기’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습니다. 잉글랜드 화폐 ‘대타락’(The great debasement)이라고 부르는 사건이었습니다.

 

잉글랜드가 얻은 건 잠깐의 푼돈이었습니다. 잃은 건 신뢰라는 큰 자산이었습니다. 앤트워프 상인들은 잉글랜드 왕실에 돈을 대주는 ‘전주’(錢主)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큰 이자를 요구합니다.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이유였습니다. 앤트워프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레샴이 목도한 조국의 현실이었습니다.

 

토마스 그레샴, 잉글랜드 부활의 전도사...

 

“누가 우리 잉글랜드의 신뢰를 회복해줄 수 있는가.”

 

헨리 8세가 죽었습니다. 막대한 빚을 남기고서였습니다. 그의 어린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무엇보다 재정 문제가 제1 해결과제였습니다. 그가 처음 찾은 건 토마스 그레샴이었습니다.

 

런던과 앤트워프를 연결하는 ‘민간 외교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레샴은 왕의 앞에서 당당히 얘기합니다. “폐하의 가장 훌륭한 금화와 은화가 왕국 신뢰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의 직언에 임금은 역정 대신 관직을 내렸습니다.

 

왕의 대리인(King‘s Agent)이자, 왕의 상인(Royal Merchant)이었습니다. 그가 다시 앤트워프로 향합니다. 조국의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앤트워프에 도착한 그레샴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의 화폐가 다시 옛 위상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잉글랜드 정부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상인에게, 또 은행가에게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왕실 재정의 상황을 흉금을 열고 고백합니다. 지금의 높은 이자를 줄여달라는 부탁도 청했습니다. 그레샴의 노력이 통했는지 파운드화에 대한 가치가 조금씩 부활합니다.

 

잉글랜드 왕실의 재정 부담이 줄어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상인들은 다시 예전처럼 파운드화를 가지고 국제 거래에 나설 수 있게 됩니다. 늘어난 거래는 세수의 증가를 의미했고, 잉글랜드는 다시 한발짝 앞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한 지 9개월 만에 나랏빚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메뚜기’ 그레샴이 이리저리 뛰어다닌 덕분이었습니다. 1552년 토마스 그레샴에게 기사 작위가 내려진 배경이었습니다.

 

왕좌는 바뀌어도 그레샴은 그 자리에...

 

“에드워드 6세의 흔적을 지워라.”

 

1553년 잉글랜드는 다시 대혼란입니다. 에드워드 6세가 15살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누나 메리 1세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메리 1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헨리 8세가 만들어놓고 에드워드 6세가 지키려 했던 개신교의 잉글랜드를 다시 뒤흔듭니다.

 

그녀의 별명은 ‘피의 메리’(Bloody Mary). 에드워드 6세의 애정을 받은 ‘개신교도’ 토마스 그레샴의 자리도 온전치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실각한 배경입니다.

 

그레샴의 빈자리는 대번에 드러납니다. 메리 1세의 재정 책임자 윌리엄 던실은 그레샴의 역량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남자였습니다. 왕실 재정이 곧바로 악화합니다.

 

앤트워프 상인들과 소통할 대변인도 사라져버렸습니다. 메리 1세가 다시 토마스 그레샴을 부른 이유였습니다.

 

잉글랜드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네덜란드로 건너가 메리 여왕에게 필요한 급전을 낮은 이자로 빌려왔습니다. 필요하면 자신의 신용도 함께 걸었습니다.

 

화약·무기 등의 수입을 주도한 것도 토마스였습니다. 유럽에서 전운이 고조되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가 메리 1세 통치 시기 종교 분쟁으로 정치적 대혼란 속에서도 국가 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레샴이라는 경제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폐개혁을 이끌다...

 

“파운드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놔야 합니다.”

 

다음 여왕은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 그레샴의 자리는 여전히 보장돼 있었습니다. 세 명의 군주는 모두 성향이 달랐지만 그레샴을 향한 믿음만큼은 같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전폭적인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레샴은 믿음을 기반으로 대대적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나쁜 돈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파운드화를 다시 좋은 돈으로 돌려놓자는 고언이었습니다.화폐의 질이 국가의 신뢰를 결정한다는 걸 알아서였습니다. 대규모 화폐 교체 작업이 수반됩니다.

 

잉글랜드가 다시 부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네덜란드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참지 못하겠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앤트워프의 은행가들과 상인들이 대거 잉글랜드로 피난 옵니다. 그레샴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런던을 제2의 앤트워프로 만들자는 구상. 유럽의 자본과 상인들이 뛰어놀 마당을 조국에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왕립거래소(Royal Exchange)의 탄생이었습니다.

 

신대륙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 유럽 대륙에서 무역을 하려는 사람이 모여드는 곳. 시궁창같은 욕망이 뒤엉켜 산업의 아름다움을 일궈내는 장소였습니다.

 

중동 레반트 지역의 상인도, 러시아 모스크바의 무역업자도 이곳에서 돈을 빌렸을 정도입니다. 왕립거래소는 훗날 주식이 거래되는 런던증권거래소의 모태가 됩니다.

 

세계금융 중심지의 초기 모델에 그레샴의 흔적이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잉글랜드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숨은 조력자로 그레샴이 빠지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나쁜 남편이자 애국자였던 그레샴...

 

“내 재산이 새로운 지식의 전파가 되기를 원하네.”

 

1579년 그레샴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내 앤 퍼넬리와 아들 하나를 뒀지만, 그의 유일한 적자는 17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떴습니다. 남은 자식은 앤 퍼넬리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과 사생아 딸 하나뿐.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대학 설립에 사용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아내 앤 퍼넬리가 자신과 두 아들을 위한 유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건 배경이었습니다. 토마스 그레샴은 공적으로는 애국자였지만, 가정에서만큼은 죽어서까지 폭군으로 남았습니다.

 

1597년 그의 유언에 따라 대학이 세워집니다. ‘그레샴 컬리지’입니다. 먹물의 언어인라틴어만 고수하는 다른 대학들과 달리 영어 수업을 내세운 진보적 기관이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지식이 더 많이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강의료도 없었습니다. 그레샴 가문의 수익에서 충당했기 때문입니다.국가적 석학들이 대중의 언어로 지식을 전달합니다.

 

세인트 폴 성당을 지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도, ‘세포’(Cell)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물리학자 로버트 훅도 바로 이곳에서 강의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레샴 컬리지를 과학혁명의 요람이라고 부르는 이유였습니다.

 

그레샴은 ‘글로벌 금융의 첫 번째 마법사’로 불립니다.

 

탁월한 재정감각으로 조국의 곳간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혁신적 화폐 정책으로 잉글랜드의 국제적 위상을 부활시켰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보다 뛰어난 감각을, 군주보다 원대한 포부를 가진 위대한 상인이었습니다.

 

런던 왕립거래소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는 그레샴 가문의 상징인 황금메뚜기가 놓여 있습니다.

 

잔혹한 남편이었고, 제국을 만든 위대한 경제인이었으며, 무엇보다 뜨거운 애국자였던 한 남자. 런던을 넘어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던 사내. 토마스 그레샴이었습니다.

 

<네줄요약>

 

ㅇ‘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16세기 상인 토마스 그레샴에서 따왔다.

 

ㅇ토마스 그레샴은 잉글랜드 군주들이 은화 화폐에 은함량을 줄이는 일이 국제적 타격이 된다는 걸 잘 알았다.

 

ㅇ세계적 상거래 장소인 네덜란드 앤트워프에 직접 찾아가 잉글랜드 정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뛰기도 하고, 잉글랜드에서는 다시 제대로 된 화폐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ㅇ국제 무역에서 신뢰를 되찾은 잉글랜드는 다시 충만한 재정으로 부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레샴이 ‘글로벌 금융의 첫 번째 마법사’로 불리는 이유였다.

 

<참고문헌>

 

ㅇ존 가이, 그레샴의 법칙:엘리자베스 1세 시대 한 은행가의 삶과 세계, 프로파일북스, 2019년

 

매일경제 강 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