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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millionaire

선종한 김 수환 추기경과 입적한 법정스님이상으로 이 주말, 이 주간 충격이네요.. 아버지와 외삼촌이 동시에 돌아가신 기분.. 두 분다 정신적으로 댄디(Dandy)한 분들인데...

제가 온갖 고상떠는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로인들을 싫어하지만 아니 이것을 모방하는 유럽에서 건너간 양키 코쟁이들을 싫어하지만 댄디즘이 19세이후 유럽및 미국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자유, 평등, 박애정신이 이 고상함의 근원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수천년간 이어져온 아시아 주요 전제주의 왕정국가들을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 발전및 시민정신의 발전에 미친 영향도 말입니다...

 

그리고 국내 주요 지성인들과 문화(예술)계에 또 다른 댄디즘 출현에 기여했음을 인정합니다... 암튼 집안에 경조사가 발생한 기분이네요... 애도의 장례식 말입니다...

 

여전히 내란준동과 국가전복세력들의 발호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그 정치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보수주의자 큰 별들이 지네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이상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않는 안정된 국가 건설을 빌면서요... 진보수장 이 재명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그렇게 만들겠지요...

 

 

제 댄디즘(Dandyism)의 정신적 기원은 홍 세화씨의 그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와 영화 "스팔타커스"입니다...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이 순재.

 

 

배우 이 순재의 빈소가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배우 이 순재가 별세한 25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내 시청자광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

 

 

변 웅전 전 아나운서가 23일 밤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나운서 시절 고인 모습.

 

 

누구든지 살다보면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 돈이 떨어져 지하실에 내려가고 핸드폰도 끓어지는 터널까지도... 주변 가족/친구/지인들에게서조차도 돈을 빌릴 수 없는 땅굴까지도.

https://samsongeko1.tistory.com/14410

 

 

제가 말입니다...

 

강성 진보주의자로서 없는자들의 진정한 대부가 되고자하는데 영향을 미친 두 분의 책이 있습니다...

 

사상적으로는 신 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였고, 현실적으로는 홍 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습니다... 대학교때 읽은 수많은 운동권 저서보다는 이 두 양반의 책이 결정타였네요...

 

제 진보주의는 말입니다...

 

암튼 우선 가장 시급히 찾아야할 곳은 거주지 행정복지센터(구 동사무소)입니다... 일단 행정복지센터(관할 동사무소)에 긴급생계비 신청을 원한다는 말씀을 하심니다...

 

이건 신청일 2~3일안에 바로 나옴니다... 교도소나 구치소 3개월이상 수감후 출소자의 경우는 다음날 바로 나옴니다... 50만원 초반대의 1개월치 생활비를 바로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대 3개월까지는 나오고요...

 

담당 공무원이 그 건강상태, 실업유무에 따라서 민원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바로 구제해야할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수급자(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드려야할지를 판단합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정확한 상태를 이야기해야한다는 겁니다... 교도소에서 나온거라면 출소증명서를 몸이 갑자기 안좋아진거면 진단서를 아무튼 본인의 상태를 알릴 수 있는 정확한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이번주와 같이 긴급재난이 발생하여 피해가 극심하면 이 상태도 정확히 이야기합니다... 공무원들은 사회취약계층을 지키는 도우미들입니다... 거주민들의 진정한 벗이고요...

 

가장 먼저해야할 것은 긴급생계비를 받아내는 겁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근로능력이 있는 2종과 근로능력이 없는 1종으로 나누며 이건 판정시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선정(생계, 주거, 의료급여)되면 3개월치를 신청일로부터

 

역산하여 한꺼번에 줍니다...

 

2025년기준 76만원정도 최대 228만원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정이 늦어지면 말입니다... 담당 공무원께 '긴급생계비'가 우선 필요하다고 말씀하세요...

 

아래는 말입니다...

 

이 방법말고 담보는 고사하고 신용도 보증인을 구할수도 없다면 이용할 수 있는 두 곳입니다... "더불어사는세상"이라는 곳에 회원 가입을 하고 착한대출을 신청하면 최대 100만원까지

 

아무런 조건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은 형사적 위기에 처해 징역형이 아니고 벌금형을 받아 수배자 신세에 처해지기전이거나 수배중일때 긴급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벌금대납을 최대 300만원까지

 

아무런 조건없이 관련서류만 구비하면 빌려줌니다...

 

가난은 죄가 아님니다...

 

단지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가지고 자활의 의지가 있느냐가 양기관에 어필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라는 사실만 말씀드리죠... 생계비 100만원/벌금대납 300만원 작은 돈 아님니다...

 

제가 무기명으로 후원하고 있는 곳들입니다...

 

위와 같은 의지를 보이고도 희망이 안보인다면 저한테 연락하시고요... 전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명언을 깨기 위해 주요 진보주의적 계획들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일부 소액대여(?)의 "그라민은행" 같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음으로 양으로 13명을 지원중이고요... 3만원에서 시작해 10만원, 30만원, 100만원까지요...

 

제 기준은 노 코멘트합니다...

 

 

(2020.2.7)그 봉 준호 감독...?? 어제 10년만에 아버지가 또 돌아가셨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9113

 

 

The greed is good...

 

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대증권시장 필명의 연원이 있는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 커크 더글라스씨께서 향년 103세로 말입니다... 대표작 "스팔타커스", "OK목장의 결투"가 있고요~~~ 제 아버지 돌아가신 2010년이후 정신적 아버지였는데 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극중 고든 게코(Gekko)역으로 1987년작 "월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뭐진 그 아드님 마이클 더글라스씨에게도 여전히 당신은 제 정신적 지주이며 위로의 말씀을 올림니다. 이 코멘트 꼭 그 분이 봤으면 좋겠군요~~~~~

 

 

아래는 자정이후 주요 6개 SNS에 올린 코멘트들입니다...

 

 

"사진은 댄디즘(Dandyism)의 시조로 알려진 영국 조지 브러멀의 동상...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댄디를 ‘독창적이고자 하는 정신적 귀족주의자’로 생각했으며 댄디즘을 ‘퇴폐기에 출몰한 마지막 영웅주의의 섬광’으로 표현했고요...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이 주말과 이 주간에는 왜 아버지와 외삼촌이 동시에 돌아가신 것처럼 느껴지지요... 국민배우 고 이 순재씨와 국민MC 고 변 웅전씨...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종교/문화/예술계의 어른들이 계속 돌아가시네요... 고 김 수환 추기경과 입적한 법정스님부터 이제는 문화계 어른들까지... 댄디(Dandy)했던 두 양반... 21세기내내 대한민국은 인재난에 시달리네요...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게코(Gekko)"

 

 

"최근 패션과 미용에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이 늘자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그루밍족’과 ‘로엘족’이 그것입니다. 그루밍족은 마부를 뜻하는 ‘groom’에서 파생한 말로 마부가 말을 목욕시켜주고 갈기를 빗질해주는 모습에서 유래했습니다. 로엘족은 그루밍족과 같은 뜻이지만 특별히 30대에서 50대까지의 중년 남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루밍족이나 로엘족처럼 남성의 멋 내기와 관련한 신조어가 19세기 초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댄디즘’입니다. 멋쟁이를 뜻하는 ‘dandy’에서 나온 말로 세련된 옷차림과 몸가짐을 통해 은연중 자신의 정신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데요. 댄디즘의 시조는 누구일까요?

 

19세기 초의 영국 신사 조지 바이런 브러멀입니다. 옷차림과 매너가 얼마나 멋졌던지 사람들이 ‘보 브러멀(Beau Brummel)1) ’이라 불렀는데 이 별명이 훗날 영어권에서 멋쟁이 남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됐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조지 바이런 브러멀, 아무리 들어도 생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생전에 한 일이라곤 오로지 몸치장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1778년 런던에서 태어난 브러멀은 이튼학교와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부터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했습니다. 179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고, 곧 런던 사교계의 총아로 떠올랐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런던 사교계에는 또 한 명의 유명한 멋쟁이가 있었지요.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입니다. 둘의 이름이 비슷해서 흥미롭고 헛갈립니다. 이 시점에서 브러멀이 얼마나 대단한 멋쟁이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그의 별명이 멋진 남성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일단 몸단장을 하는 데 매일 다섯 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항상 깔끔하게 면도했고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넘겼습니다. 특별히 화장을 하거나 향수를 뿌리지는 않았습니다. 늘 빳빳하게 풀 먹인 흰색 린넨 와이셔츠를 착용했는데 직전에 세탁한 옷이 아니면 입지 않았습니다. 브러멀의 패션에서 포인트는 두 시간 동안 마음에 들 때까지 풀었다 맸다를 반복했다는 ‘크라바트’였습니다. 넥타이처럼 매는 남성용 스카프인데요. 이를 의식한 듯 시인 바이런은 브러멀의 크라바트보다 더 튀어 보이는, 레이스 장식이 달린 의상을 착용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런던 사교계에서 시작된 댄디즘은 정작 영국보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정신적 우월함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너도 나도 댄디즘에 집착했는데, 프랑스에 유독 고가 브랜드가 많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지요. 자신의 우월함을 겉치레로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것이 바로 고가 브랜드이자 브랜드 마케팅이니까요. 그러나 요즘의 댄디즘은 정신적 우월함을 강조하고 싶어했던 19세기 댄디즘과 달리 오로지 겉모습과 몸치장 그 차제로만 논의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댄디즘의 시조 브러멀은 어떤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을까요?

 

런던 사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도박과 사치에 빠져들면서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말년에는 멋에 흥미를 잃고 지저분하게 지내다 1840년에 칸의 자선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유서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단추를 풀었다 채웠다 하는 권태로운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댄디즘의 빛과 그늘을 모두 보여준 인물이 아닐 수 없지요. 비록 속물이었지만 브러멀은 당대의 시인 바이런과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고, 2002년 런던 도심에 브러멀의 동상이 세워지기에 이르는데,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순전히 멋을 잘 낸 것만으로 역사에 남고 동상까지 세워진 경우는 조지 바이런 브러멀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로 배우 이 순재 오늘 새벽 별세… ‘한국 TV 60년’의 상징...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이순재(91)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유족 측은 “오늘 새벽 영면했다”며 “아직 빈소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1934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영화를 통해 연기의 길을 택했고, 1956년 연극으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브라운관 시대와 함께했다.

 

출연작은 140편이 넘는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를 비롯해 ‘동의보감’, ‘허준’, ‘이산’ 등 굵직한 작품에서 묵직한 연기로 존재감을 남겼다.

 

70대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코믹 연기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이른바 ‘야동 순재’ 캐릭터로 어린이 팬들까지 생겨났다.

 

연기 뿐 아니라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나이를 잊은 열정을 보여줬다. 빠른 걸음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도 얻었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무대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에서 대사량이 많은 배역을 소화하며 ‘노장 배우’의 상징으로 불렸다.

 

정치권에서도 활동했다. 1992년 서울 중랑갑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서 부대변인,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맡았다.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며 연기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마지막까지 연기 혼을 불태웠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기는 평생의 숙제”라 말해온 그의 연기 인생은 60여 년 동안 한국 TV·연극사와 궤를 같이 햤다.

 

스타투데이 진 향희 기자

 

 

[종합]"곧 만나요. 거기서 또 연극해요"… 故 이 순재 빈소 조문 행렬...

 

25일 새벽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故 이순재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가운데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조문 행렬에 연예계 동료뿐 아니라 각계각층 인사들이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연합뉴스는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날 고인과 함께 작품을 함께한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고 전했다. 배우 백일섭은 "우리끼리 '95살까지만 연기합시다. 그때까지 나도 같이 살 테니까'라고 했었는데 꿈에도 생각 못했다"면서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장용은 "형님과는 TBC에서부터 55년간 드라마를 같이 하면서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형님처럼 늘 가까이 지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아주 귀감이 되고 어떤 때는 멘토이자 로망이셨다. 대단하신 어른이자 선배님이다. 애통한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손숙은 "옛날부터 친했던 분이고, (고인이) 말년에 연극을 많이 하셨을 때는 제가 십여년 가까이 부부로 많이 나왔다. 순재 오라버니, 곧 만나요. 거기 가서 또 연극해요"라고 고인을 기렸다.

 

최수종은 "살아있는 역사이고 참 증인이시기 때문에 저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참담해 했다. 그는 지난해 고인이 KBS 연기대상을 받을 당시 함께 무대에 섰었다.

 

원로배우 김성환은 빈소가 채 준비되기도 전에 고인을 찾았다.

 

그는 "탤런트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 제일 큰 어른이시고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면서 "생전 저를 보면 '김성환을 내가 뽑았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에게 정말 큰 별이셨다. 이제는 촬영하시면서 밤도 안 새우시고, 아주 편안한 데서 정말 잘 계셨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대가족'에 이순재와 함께 출연한 배우 이승기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승기는 "'배우는 대사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셔서 기억력을 복구하시려고 미국 대통령의 이름도 외워서 말씀하시곤 하셨다. 선생님이 걸어온 역사를 많은 분이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이순재 선생님이 결혼식 주례도 봐주셨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연기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나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드라마 '야인시대', '장희빈' 등을 함께 한 김학철은 "늘 격려해주시고 버팀목이 돼 주셨던 이순재 선생님 편히 쉬세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뵈면 멋진 연극 같이 해봅시다"라며 울먹였다.

 

고인과 인연은 없지만, 조문 첫날 일찍 빈소를 찾은 배우도 있었다. 배우 최현욱은 "새벽에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면서 "한 번도 뵙지 못해서 이순재 선생님을 그냥 한번 뵙고 싶었다"고 말했다.

 

'꽃보다 할배'를 같이한 배우 박근형·이서진과 나영석 PD,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함께한 정보석·최다니엘·서신애·진지희도 빈소를 찾았다. 이밖에 유동근, 김영철, 최지우, 정준호, 유준상, 소유진, 김광규등

 

많은 후배 배우도 직접 빈소를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배우 선후배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연예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이순재 성대모사로 유명했던 코미디언 최병서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그는 "제가 성대모사를 할 때마다 너무 좋아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분야를 떠나서 연예계 큰 스승이 돌아가신 것 같다. 큰 별이 져 문화예술계에 타격이 클 것 같다"고 애통해했다.

 

김 학래는 "전유성 선배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두 거장이 이렇게 한꺼번에 우리 곁을 떠나시니 집에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한구석이 휑한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문화 예술인의 위상을 굉장히 높이신 분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라고 애도했다. 가수 이용은 "분야는 다르지만 제가 가고 싶은 길이 이분의 길이었다"면서

 

"'엄마의 일기'라는 드라마에서 저의 아버지셨다. 드라마 할 때 대사를 잊으니 선생님이 '진짜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그러면서 "아들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박경림은 "늘 저희에게 문화예술인은 이런 모습이어야 된다는 걸 말씀으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며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빈소에는 정관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오 시장은 "온 국민이 저와 함께 이 진정한 연기인, 진정한 국민 배우를 보내드리는 길에 함께 명복을 빌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박술녀 박술녀한복 원장은 고인의 수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박 원장은 "5~6년 전에 선생님께서 제 한복을 입으셨던 적이 있다. 유족들이 그 일을 기억해 오늘 (수의 관련) 논의를 하게 됐고, 내일 (입관식 때) 입혀서 보내드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인이 국회의원을 지내던 시절 연을 맺었다"면서 "정치를 하시면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을 자주 만나고 중간에 서서 (여야와) 부드럽게 지냈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한편, 정부는 이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한국방송대중예술인단체연합회는 KBS 본관과 별관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 오는 30일까지 누구나 조문할 수 있도록 했고, 27일 발인식에 맞춰 KBS 별관에서 별도의 영결식을 치르는 방안도 유족과 논의 중이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 20분, 장지는 이천 에던낙원이다.

 

한경닷컴 이 보배 객원기자

 

 

'명랑운동회' 국민 MC에서 정치인으로… 변 웅전 전 의원 별세...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운동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늦잠을 깨워주던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공, 1970∼1980년대 인기 프로그램 ‘명랑운동회’의 진행자이자 정치인으로도 활동한 변웅전 전 의원이 별세했다. 85세.

 

24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3일 밤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명숙 씨, 아들 변지명·지석 씨가 있다.

 

1940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산농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3년 KBS(당시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에는 고참들의 지도를 받으며 야간 뉴스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최평웅 전 아나운서의 회고록 『마이크 뒤에 숨겨둔 이야기들(2023)』에 따르면, 고인은 젊은 시절 ‘자정 대공뉴스’ 진행 후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복귀해 새벽 2시 뉴스를 진행하다 방송사고를 내

 

장기범(1927∼1988) 당시 방송과장으로부터 지방 발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때 그의 큰 시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지방 발령으로 전국을 돌며 다양한 공개방송과 좌담 프로그램을 맡아 실전을 쌓았다.

 

고인은 인터뷰에서 “그 경험이 제 능력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약 1년 뒤 서울로 복귀했을 때 그는 이미 대형 프로그램을 소화할 만한 진행력을 갖춘 아나운서가 돼 있었고, 1969년 MBC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당시 최고의 예능 PD였던 김경태(1935∼1995)에 발탁돼 MBC 인기 프로그램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등을 진행했다.

 

‘명랑운동회’는 코미디언 등 유명인들이 출연해 철봉에 매달려 풍선 터트리기, 손 안 대고 떡 먹기, 장애물 달리기 등 각종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전국 MBC를 돌며 녹화를 했다. 강렬한 사랑을 받았던 때”라고 지난해

 

한국아나운서클럽 인터뷰에서 이 시절을 회상했다.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실제로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게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유쾌한 청백전’을 통해 보조MC로 고향 후배 이상용(1944~2025)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상용은 과거 중앙일보에 “변웅전 선배가 미국에서는 말로 웃기는 스탠딩 코미디가 인기라며 적극 권했다”고 회상했다.

 

2011년에는 MBC에서 50년간 가장 존경받는 아나운서이자, 아나운서실을 빛낸 선배에게 주어지는 헌정패를 받았다.

 

고인은 당시 소감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이 느린 충청남도, 그 중에서도 가장 느리다는 서산·태안에서 초·중·고를 나온 처지에서 각고의 노력, 눈물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아나운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임하니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삼촌이 준 녹음기에 원고를 반복해 녹음하며 아나운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정치 쪽으로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발을 들였다. 정계에 입문한 후론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16, 18대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3선 의원이 됐다.

 

18대 국회에선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뛰어난 언변은 정치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DJP연합’(김대중-김종필)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들어냈다.

 

국회의원 재임 시절이던 2008년에는

 

유재석·나경은 부부의 결혼식 주례로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의 마지막 정치 행보인 2011년 자유선진당 대표로 선출됐을 땐 “야당다운 야당을 하겠다. 작은 만큼 매운 정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후에 고인은 인터뷰에서 “아나운서와 정치가 두 직업 모두 말로 하는 직업이니, 정직한 사람은 통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나는 정치계에 나가서도 ‘아나운서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라고 유세했다”고 전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는 “상대 당을 칭찬하는 풍토를 만들면 좋겠다.

 

여·야가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조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판교 자하연이다.

 

중앙일보 황 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