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 - 앞으로 1주일(2.25~3.3)간 수석 재산관리 집사님이 봄방학 부재중인 관계로 대표이사님의 주요 저장된 글은 주요 블로그/SNS 대리 관리인(이 글의 주요 공유기인 대표이사님의 비지니스폰도 보유중...) GI IR실장인 제가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주제곡입니다...
"우울하네요"
여전히 척살되지 않고 있는 을사오적의 그 매국노들과 친일부역자들과 그 후손들이 토착왜구화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주요 친일 인사들을 대변하는 있는 최 상목 권한대행의 삼일절 기념사는 듣지도 않았고요...
올해 광복 80주년입니다...
8월에 나올 홍 범도 장군의 다규멘터리 "독립군"이나 기다림니다... 그리고 내년도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에게서 삼일절 기념사 제대로 들을겁니다...
이 드라마 일제감정기 부분 1부만 볼 예정이고, 2부 광복후 제대로된 반민족행위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진행된 건국이후의 제3공화국 부분은 관심 없습니다...
이때 우린 프랑스의 나치협조자들 단죄처럼 반민족행위자들을 전부 처형했어야 했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의 중심에는 이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봄방학에는 삼일절도 있고 2000년대초반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를 본다. 김 좌진 장군의 아들 김 두한처럼 국회와 상모질이 행정부에 똥물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903
상모질이 윤씨, 오늘 시간제한받지 않는 최종 진술...??
12월3일부터 리얼하게 진행과정을 생중계로 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일고의 들을 가치도 없는 진술일꺼라 듣지는 않고 글이나 올림니다...
뉴스에서 들리면 영조대왕처럼
'귀를 씻어낼 것이고...'
전 "모래시계"의 최 민수씨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초창기 한국 영화배우 허 장강씨의 아들 허 준호씨를 좋아합니다.. 그 영화 "실미도"에서의 인간적인 매력에 푸우욱 빠졌고요^^
https://samsongeko1.tistory.com/13888
저보다 네 살위 형님이고요^^ 한국 영화 초창기때의 대배우들 아들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님입니다... 저도 원래 보수주의자라고 봐야 합니다...
~~~(중간생략)~~~
네번째로 민족적 자존감을 상실케하는 외국 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화시키고 그 장점을 받아들여 역으로 한류로 역세계화 통합시키며, 외국 문물의 단점은 철저히 배격한다...
~~~(중간생략)~~~
난 진정한 진보주의자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극우를 제끼고 진정한 보수주의자와 보수당이 되면 전라도에서 진정한 진보주의자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나저나 조만간 여동생이 사는 안산 대부도에 있는 "동춘서커스" 장 공연이나 애들과 아내데리고 가 구경하고 싶네요... 어렸을때 서커스 공연을 딱 한번 본 적은 있는데,
몇 십년동안 잊고 살았네요... 애들한테 좋은 추억이 될거 같네요^^ 아내도 아예 못봤을거 같은데??^^ 저녁 8시30분에 U-20 아시안컵 8강전 보기전입니다... 전 축구광팬의 전형적인 토종 조선놈이라고요...
독재자 이 승만이를 몰아낸 4.19 의거의 발상지... 민족 고려대학교 내 모교에 극우 꼴통들이 꽈리를 틀었다...?? 하여튼 우리 기성세대들이 국가를 잘못 이끈 대가를 치루네요
https://samsongeko1.tistory.com/13887
민족 고대 후배들아...
이 대선배가 미안하다... 상생과 설득과 협치의 정치를 잃어 니들을 국론 분열의 중심에 들어서게해서 말이다... 그렇게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도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네... 탄핵찬성이든 반대든 니들 의견은 존중한다...
뭐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겠지...
우린 '윈스턴 처칠', '마가렛 대처' 같은 보수주의자나 보수당은 없다... 대한민국에는 어용 보수만이 있어 난 진보주의자의 길을 가게된 것일뿐... 더불어민주당의 중도보수..?
https://samsongeko1.tistory.com/13869
나도 원래 보수주의자라고 봐야 한다...
한민족 500년 불구대천의 적 대일(그들의 시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강경 노선, 박 정희 전대통령의 자주,자립.자조 정신에 입각한 국방(외교)/경제관, 강력한 민족주의 추구...
조선말 흥선대원군 같은
내가 기준을 알려준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첫째로 자유 민주주의 기치아래 글로벌 평화에 기여하면서도 어떠한 나라와도 굴종외교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일본이든 말이다...
둘째로 자주, 자립, 자조의 3대 정신에 근거해 국방(외교), 경제(금융), 사회(문화)에서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입장에서 독자적인 실력을 스스로 만든다...
세번째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반대인 공평한 분배 공산주의에는 반대하나 없는 자들을 아우르는 유럽식 사회주의 주요 복지정책들을 자본주의 중심의 경제성장과 함께 고려한다...
네번째로 민족적 자존감을 상실케하는 외국 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화시키고 그 장점을 받아들여 역으로 한류로 역세계화 통합시키며, 외국 문물의 단점은 철저히 배격한다...
이게 아니면 '내란수괴' 상모질이 윤씨이하 "국민의짐" 이든
이 재명이하 "더불어민주당"이든 보수를 논하지말라...
윈스턴 처칠이나 마가렛 대처같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나 보수당이 없어 강력한 민족주의자이자 정통 진보주의를 보수주의로 여기면서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비운의 민주화 운동 세대
게코(Gekko)가 설파하고 있는 중이다...
난 진정한 진보주의자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극우를 제끼고 진정한 보수주의자와 보수당이 되면 전라도에서 진정한 진보주의자도 나타날 것이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모든 것...
1. 개요
조선의 주먹 황제를 소재로
SBS에서 총 124화에 걸쳐서 방송한 당시 전국민이 열광했던 전설적인 인기의 근대 사극/대하드라마.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제3공화국 시대까지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다 간 실존 인물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주연은 안 재모와 김 영철, 극본은 이 환경 작가, 연출은 장 형일 감독이 맡았다. 둘은 그전에도 KBS에서 「무풍지대」를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SBS에서 다시 만나 함께 작업했다.
소설판 서문 등을 종합해 보자면
이환경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준비해왔는데, 기본적으로 김 두한의 자서전 격인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1963)와 동아방송의 「노변야화 - 김 두한 편」(1969)을 바탕으로 각색을 가미해 만들어졌다.
후반부 동대문파 관련 이야기는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 기반을 상당수 뒀으며, 국회 속기록, 김 두한과 활동했던 인물들의 증언 등도 참고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광복까지가 1부, 광복 이후부터 자유당 집권 말기인 4.19 혁명 및 5.16 군사정변 직후 제3공화국의 출범, 그리고 유신헌법 투표일(김 두한의 사망일)까지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는 1부와 2부 모두 50화로 하여 총 100화로 기획되었으나, 2부 방송 도중 작가의 요청으로 24화 연장이 결정되어 124화로 마무리됐다.
2. 줄거리
요약하면 1화 ~ 8화는 김 두한의 어린 시절, 9화 ~ 50화는 일제강점기 아래 청년 김 두한(안재모)의 항일운동 시기, 51 ~ 76회까지는 미군정 아래 해방 직후 절친이던 김 두한과 정 진영의 이념 대립,
76 ~ 90회까지는 이념 대립에 따른 좌우익 싸움 그리고 남북한 정부 수립과 6.25 전쟁, 90회 ~ 122회는 정전 협정 수립 이후 김 두한의 정치인생, 명동 VS 자유당의 힘을 업은 동대문의 싸움, 자유당의 몰락,
122 ~ 124회까지는 박 정희 정권기 및 김 두한의 말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김 두한에 비길 수 있는 인물은 1부의 하야시, 2부의 시라소니 정도이지만, 동대문 사단 결성부터 사형 전까지는 이 정재를 사실상 주인공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 정재 역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00회 정도를 지나면서 사실상은 극 중의 중요한 일은 거의 다 동대문의 이 정재, 임 화수, 유 지광과 이 기붕, 곽 영주 위주로 나온다.
김 두한은 자유당과 이 정재의 동대문파가 난동을 부리면 신문으로 그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탄식하는 역 정도. 또 2부에서도 이 이 정재가 중심인 2부 중반 이후 분량은 김 두한 개인의 일대기 이상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명해서 흡사 「공화국 시리즈」의 「제1공화국」 같은 느낌이 난다. 이는 유 지광의 동명의 자서전에 기초한 이 환경 작가의 전작인 〈무풍지대〉의 영향이 크며, 2.5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2부는(51화 ~ 124화) 1부의 화려한 액션 느낌은 많이 퇴색되고 정치적인 싸움이 중심이 된 바람에 인기가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특히, 2부 파트 가운데 대부분은 정 진영과 김 두한-자유당, 이 정재와 김 두한,
명동파의 파벌 싸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어서 화려한 액션의 재미는 반감되고 애초에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비장함과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루즈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부에서 한때 40 ~ 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거둬서 인기가 하락했어도, 평균 20 ~ 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 장년층들에게 추억물 드라마로도 인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2부가 1부보다 내용 면에서 고평가받는다. 합성물의 주 내용이 모두 2부 시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2부도 인기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졌던 건 아니다.
당장 위 문단에서부터 어린이들이 흉내 냈던 인물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였는데, 시라소니는 1부에선 나오지 않는다.
2부 초중반, 즉, 공산당이 주된 악역인 파트에서 작중 비중 있게 등장하던 주연들이 대부분 죽어나간다. 제일 먼저 김무옥이 죽고 또 얼마 못 가서 개코가 죽는다.
그리고 우미관패의 배신자이자 공산당 파트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정진영의 죽음은, 알다시피 본작에서 손꼽히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그나마 오래 살아있었던 문영철도 6.25 전쟁통에 결국 전사한다.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영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김두한은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이후로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매우 쇠약해졌다. 때가 때인지라 김두한은 중정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했다.
이종석 교수가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걸 옮기면 희대의 협객도 중정에 끌려간 후로 흐물흐물해져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 그리고 일제강점기 파트에서는 김두한이 표면상으로나마 일본에 저항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대에 본인과 부하들이 고문당한 때 번개가 전기고문으로 감전사했고, 와싱톤 역시 김두한의 자수로 인한 석방 후에 조용히 우미관패에 벗어났다.
그리고 우미관패 두목인 김두한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해산하였던 우미관패 사람들은 김두한이 따로 지원해 줄 형편이 못 되어 사회의 최하류 계층으로 떨어져 병사(신영균[A]),
알콜중독으로 인한 병(김관철[A], 홍만길[A])과 정신병원(휘발유[A], 아구), 자살(갈치), 이민(김영태), 군부에 의한 체포 및 재판(김삼수) 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
또한 김두한 역시 나중에 사기를 당하게 되어 처지가 곤란해지고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악화되어[25] 1972년 11월 21일,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장례식 때 우미관 원년 멤버 중 휘발유만 등장한 것으로 보아, 한국에 남아있던 원년 우미관패 중에선 휘발유만 생존했거나 적어도 움직일 수 있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최동열 기자는 김두한이 활약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그것이 바로 야인시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참고로 최동열 기자는 작가의 극중 개입용 캐릭터로, 김두한보다는 20살 남짓 많다.
흔히 김두한보다 30~40살 정도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동환 씨가 최동열의 학생 시절부터 연기를 하다 보니 생긴 오해다.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70대 중후반 정도였을 것이다.
다만, 김두한 패거리 대부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김두한, 문영철, 정진영을 제외한 대부분이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3.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애초 기획부터 시대 배경, 등장인물, 극의 방향점과 분위기 등 많은 부분이 달랐다.
1부는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고, 김두한이 주먹패 오야붕이 되는 과정 및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이 주제라면, 2부는 광복 이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고 김두한이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공산당과 독재에 맞선다는 정치적인 내용들이다.
그나마 6.25 전쟁 전까지는 여전히 김두한의 액션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었으나, 이 액션 장면마저도 배경음악으로 주로 야인 또는 영웅주의가 깔리던 1부와는 달리, 중후하면서도 위압적인 성악풍의 나 사나이다가 깔리기 시작하며,
회가 끝날 때 나오는 엔딩 OST도 51화부터는 그에 맞게 바뀐다. 바뀐 분위기가 단적으로 체감될 정도. 배우도 1부는 청년 배우들이, 2부는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니 1부와 2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드라마로 봐야 할 정도이다.
이러한 점을 설명하자면, 원래 야인시대는 중년 김두한의 정치 인생을 다룬 2부가 중심이 되는 메인 스토리였고 야인시대의 제작진들은 종로의 오야붕이자 조선의 주먹황제 시절이었던 김두한이 아니라 정치인 시절의 김두한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는 실존인물 김두한의 리즈 시절은 주먹깡패였던 청년기의 시기가 아니라, 8.15 광복 이후부터 정치깡패로 전업하고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중년기의 시기가 바로 김두한의 진짜 리즈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재모가 출연하는 청년기의 1부가 아니라 김영철이 출연하는 중년기의 2부가 야인시대의 본격적인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극 이야기를 전개하면 쉽게 시청률을 얻기가 어려울 뿐더러 텔레비전 드라마는 일정 수준의 시청률이 나오지 못하면 조기종영을 당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해야 했다고 한다.
야인시대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도록, 드라마를 1부와 2부로 나눠서 구성했다.
1부의 시청률이 매우 탄탄하면 2부에서 1부보다 인기가 못하더라도 고정 시청률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는 있고, 고정 시청률만 보장된다면 조기종영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두한의 생애에서 종로 우미관의 오야붕 시절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기에, 야인시대 제작진은 김두한의 주먹깡패 시절을 중점으로 다룰 1부에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할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예상은 적중했다. 시청률이 엄청 좋았던 1부에 비해 시청률이 반토막 난 것 뿐이고 여전히 20%대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자랑했다.
즉, 1부는 2부를 이끌어 줄 베이스가 될 인기를 확보하기 위한 서막이었다.
따라서 1부는 〈장군의 아들〉처럼 열혈 액션 위주로 흘러갔고, 김두한을 중심으로 액션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실제로는 맞붙지도 않은 김두한 vs 신마적을 비롯해서 주요 인물들 과반수가 차례차례 김두한과 맞붙도록 묘사했고 당연히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는 야인시대가 MBC 드라마 〈복수혈전〉 이래로 최고의 액션 드라마로 각광을 받는 요소로 크게 작용했고, 야인시대 제작진이 처음에 의도했던 계획은 성공한 듯했다.
문제는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그야말로 반토막이 난 것이다.
야인시대를 순수하게 액션 하나 때문에 보던 시청자들이 대거 이탈함으로 인해 시청률이 떨어진 탓이 가장 컸지만, 갑자기 팍 늙어버린 김두한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낀 탓도 매우 컸다. 이는 김영철의 인기 문제는 아니었다.
김영철은 그 직전에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아 주인공 왕건조차 묻어버리는 큰 인기를 누렸고, 이 때문에 야인시대에 캐스팅될 때 기대도 컸다.
그러나 예상외로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 1부는 더 이상 시대극이라고 보기 힘들었고, 주 시청자들과 이들이 기대하는 것도 달랐다.
「김영철 주연 시대극」을 볼 만한 시청자 상당수는 이미 액션 활극이 되어버린 야인시대를 안 보고 있었고, 그동안 야인시대 애청자들은 액션 활극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드라마의 성격이 바뀌니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8.15 광복 직후 김두한의 실제 나이는 28세였는데, 야인시대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무렵의 안재모는 25세, 김영철은 51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년기의 정진영(차광수), 개코(성동일), 이정재(김영호) 등을 맡은 배우들은 당시 30대 후반이라 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시청자들이 받은 큰 충격에 한 몫했다.
사실, 1부 마지막화에서는 안재모에게 수염을 안 깎고 최대한 나이 들어보이게 꾸몄으며, 김영철은 머리스타일과 분장을 최대한 어려보이게 나온걸 봤을 때 제작진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만 23세가 20대 후반처럼 보이고, 만 51세가 40대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 등 2부에서 배우가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간 캐릭터들도 있다 보니 김두한과 이들이 같이 있는 장면이 나올 때면 위화감이 엄청났다.
김영철 본인도 〈가로채널〉에 출연해서 '궁예 때는 시청률 견인기였는데, 야인시대에서는 오히려 시청률이 반 토막이 났다'라는 양세형의 질문에 "그때 50살인 자신한테 28살 김두한 역을 맡겼으니 반 토막 안 나고 배기냐"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라디오 스타〉에서는 "결국 (사딸라 짤방으로) 살아남은 건 2부의 김두한이니 승자는 자신"이라며 유머 감각을 보여주었다.
김영철은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배역이 중간에 바뀌면 시청자들이 괴리감을 느낄 것이니 청년 시절부터 연기를 하겠다며 이환경 작가에게 요청을 했다. 그러나, 1부와 2부를 별개로 계획했던 이환경 작가는 오히려 김영철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고,
결국 2부만 맡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2부 시작와 동시에 김영철로 바뀐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아직 젊었던 시기인 미군정 시기부터 6.25 전쟁까지는 안재모가 계속 연기를 하다가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다만 안재모가 일본 경찰 및 건달과 싸우면서 의적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대로 갔을 경우 광복 후 백색테러와 반대세력 납치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변화된 모습에 오히려 시청자들이 괴리감을 느껴 납득할 수 있었겠냐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 초기엔 김영철의 김두한을 가장 중심적인 인물로 밀어줬다는 사실은 드라마 방영 직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1부 스틸컷인데, 2부에만 나오는 김영철이 안재모를 제치고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과 최동열 기자 역의 정동환을 제외하면 전부 1부에만 나오는 배우들이다.
또한, 최동열 기자의 스타일은 영락없는 1부의 모습인 반면에 중년 김두한은 국회의원 뱃지까지 달고 있는 국회의원 시절의 모습이다. 작가의 의도는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1화 첫 등장 장면에 넣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만약에 김두한의 주먹 인생을 중점으로 다룰 것이었으면 종로의 오야붕으로 군림한 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사에 '김두한' 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남긴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드라마 첫 도입부 부분에 두고, 그 후 취조를 받을 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서 건달이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김두한의 인생을 주된 내용으로 다룰 것을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안재모가 연기한 젊은 김두한이 대단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면서 1부를 이끌어가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액션 블록버스터 요소와 1부의 여러 여주연들의 인기가 맞물려서 1부가 오히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1부의 대단한 인기 덕분에 SBS 공식 홈페이지 포스터나 출연진 목록도 모두 안재모를 내세웠고, 당시 홍보를 위한 토크쇼 출연이나 야인시대 포스터의 중심도 안재모가 차지했다.
#즉, 정리하자면 1부는 애피타이저이고 2부가 메인 메뉴인데, 의도치않게 애피타이저가 너무 맛있어지는 바람에 정작 메인 메뉴가 상대적으로 죽어버렸다는 소리다.
아무튼 김영철 배우는 본인 역시 1부의 인기를 봐왔기 때문에 저 장면에서 시청률이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다만. 설마 그 정도까지 확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물론 2부에서도 1부만큼은 아니지만 액션을 꽤 많이 넣을 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바로 차지철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차지철은 반쯤 깡패인 인물이었고 국회의원 시절 툭하면 다른 의원들을 구타하는 등 국회에서 싸움을 일삼던 의원이었다.
실제로도 그 차지철은 김두한과 하마터면 맞붙을 뻔했으며 그 사건 이후 차지철은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경무대 경호실장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 이걸 비틀어서 김두한 VS 차지철의 싸움으로 만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당시 2부 배역 전환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당시만 해도 컸지만, 지금에 와서는 당시 시청률 반토막 난 대신 오히려 야인시대의 수명을 20년 이상 늘려준 최고의 반전 캐스팅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그야말로 한때 잘나갔던 추억의 드라마로만 남을 것을 20년 이상 각종 패러디, 밈 등으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레전드로 남게 되었으니까. 괜히 중년 김두한을 맡게 된 김영철이 당시만 해도 시청률 떡락으로 충격을 받았으나
지금은 나만 살아남았다고 너스레 떠는 게 아니다.(...)
4. 오리지날 사운드
대부분의 OST가 종영 2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에 유명했고, OST 자체가 주먹 다툼하는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거나, 근현대사의 격동을 표현하기에 너무 적절했기 때문.
여기에 더해 인터넷상에서의 컬트적인 인기까지 더해졌으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남성적이고 사나이의 감정을 울리는 노래들이 많다.
강성이 부른 주제가 〈야인〉은 청년 파트에서 싸움할 때 자주 흐르던 곡이라 그런지 이후 각종 매체에서 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나왔다.
김두한이 한창 세력을 키우던 도중 술에 취해
구마적의 부하들에게 털릴 때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주인공 일행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주제가가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보통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는 아리엘 돔바슬(Arielle Dombasle)의 〈Odysseus〉 가 나왔다.
참고로 '야인'은 한 회차당 절대로 2번 이상 나오지 않으며, 김두한 외의 다른 인물의 결투 장면에선 나오지 않는다. 이때는 2대 주제가라 봐도 되는 〈영웅주의〉나 전술한 〈Odysseus〉가 나온다.
2부에서는 「나 사나이다」로 주제가가 바뀌었으며, 굳이 김두한 결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결투 장면에선 어지간하면 나오며 야인과는 달리 한 회차당 몇 번이고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 후반부에는 거의 연주곡만 나온다.
- 「야인」 (강성) - 청년기 전체,[35] 차회 예고 BGM : 청년기 - 1회 ~ 50회, 장년기 - 53 ~ 58회.
- 「영웅주의」 (강성) - 청년기 중후반, 차회 예고 BGM : 장년기 - 59회 ~ 90회.
- 「나 사나이다」 (테너 김지현) - 장년기 전체, 차회 예고 BGM : 장년기 - 51회 ~ 52회, 91회 ~ 121회.
- 「Legend of the Hero」 - 청년기 전체.
- 「전설의 영웅」 - 장년기 전체, 스포일러의 사망 장면.
- 「어깨동무」 - 청년기 - 장년기, 스포일러의 사망 장면.
- 「희망가」 - 흑화된 캐릭터들의 노래 : 신마적, 이정재
- 「달의 약속」 - 장년기 : 이정재 테마곡.
- 「용서」[38] - 청년기 히로인들이 김두한과 영원히 작별할 때 나오는 BGM. 가사 없고 음정을 바꾼 피아노 연주 버전도 있으며, 이는 2부의 애기보살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간간이 나왔다.
- 사나이 우정 - 중간마다 나오는 '범' 효과음 때문에 범범으로 불린다.
- 사나이 눈물 - 주인공 주변인물이 죽는다든지 고뇌하는 장면에서 쓰이는 배경음악.
OST는 1부와 2부가 나누어졌으며 1부는 CD로 출시되었으나 이혁준이 발매한 2부는 디지털로 발매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여러 테마들이 있었지만, 음악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하며 아쉽게도 시리즈 사운드트랙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음악감독 이혁준 본인이 2013년 사비를 털어서 미 발표곡들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저작권료를 얼마 받지도 못했고, 야인시대 음악들은 알아도 작곡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부분. 그나마 이후 평창의 꿈으로 유명세를 많이 올린 것이 불행 중 다행.
여기서 발매된 음악들은 모두 2부의 OST다.
오상사는 돼지를 상대할 때 고유 OST를 재생하며, 유지광 역시 수련 장면들과 망치를 상대할 때 고유 OST를 사용한다. 그런데 오상사의 OST는 야인시대 OST 앨범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제작진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했거나, 실수로 소각했다는 말이 있다. 만약 보존이 되었다면, YTPMV 같은 소리 매드에서 자주 쓰였을 거라는 말이 된다.
5. 국내 인기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한국 드라마를 거론할 때 반드시 꼽히는 대흥행작이었다. 종영 이후에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유명해져, 종영한지 한참이 지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레전드급 드라마이다.
역대 회당 최고 시청률로는 25위권 정도에 들지만, 이 드라마가 종영되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순위라 할 수 없다.
방영 기간 동안에는 회당 최고 시청률은 2002년 12월 9일 방영한 39회가 51.8%(분당 최고 시청률 57.4%), 평균 시청률 30%를 달성하며 일약 신드롬을 일으켰고, 방영 후에도 부천시 상동 야인시대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나무위키에 개설된 야인시대 관련 문서의 수와 양만 봐도, 드라마뿐만 아닌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타 매체로 범위를 넓혀도 야인시대보다 확실히 많은 관련 문서를 보유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1부 방영 당시엔 젊은 김두한을 분한
안재모의 액션 활극이 훌륭한 액션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나고 담백한 정극 연기, 카리스마 넘치는 다양한 액션 캐릭터들과 탄탄한 구성의 각본이 더해져 1부는 그야말로 그 해를 풍미했을 정도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5세 이상 시청가였는데 본래 사극이나 시대극의 시청자층과는 거리가 먼 아동층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는데, 매일 반대편 보스들을 쓰러뜨리는 김두한의 모습이 유치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엔터테이닝하게 전개되어
마치 「울트라맨」이나 「슈퍼전대」, 「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의 성인판, 혹은 WWE로 대표되는 프로레슬링을 연상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당시 미취학 아동들 및 초등학생들은 "나는 김두한이다!", "나는 시라소니다!" 하며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신마적 등의 흉내를 내고 다니는 일이 흔했으며, 싸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ㅇㅇ의 김두한"을 자칭하고 다녔고, 살집이 있는 이들은
"ㅇㅇ의 김무옥" 소리를 듣곤 했다. 물론 여학생들은 약간만 새침하게 굴어도 나미꼬 소리를 들었다. 당시 많은 사립 초등학교에서는 주조 연출들이 입던 코트들 때문에 교복으로 팔던 겨울 코트들이 단종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야인시대의 인기는 청소년층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중, 고등학생들이 본방사수를 위해 집단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빼먹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야인시대 방영 요일인 월, 화요일에는 감독하는 교사가 더 충원될 정도였다. 학용품은 물론 각종 게임에서도 학생들을 겨냥한 야인시대 상품(코트, 중절모 코스튬 등)이 많이 보였다.
1부 장충단 사건 때 50%대를 기록한것이 정점이었고 이후 순식간에 1부 시청률이 30% 후반으로 내려왔다. 계속 더 강한 적을 만나고 쓰러뜨리는 구조가 이어질수가 없기에 이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결과 였다.
1945년 8월 15일까지가 1부였고 이후부터 2부로 분류된다.
2부 시작은 김두한 개코 정진영 및 여러 캐릭터들이 나이가 더 많은 다른 배우로 바뀌고 진행되는데, 이때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주인공 김두한의 배역을 맡은 안재모에서 중년의 김영철로 교체되었던 것이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좀 주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시작 전부터 김영철이 2부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공표가 되었고, 1부의 시작인 1화 또한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알만한 사람은 아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드라마를 볼때 그런 부분까지 검색하면서 보는게 아니다 보니 50부동안 친숙해진 배우가 1부의 끝인 50화의 마지막에서 김두한이 뒤돌아보며 배역이 바뀌는 신에서 충격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이는 오랫동안 '야인시대 시청률 반 토막 나는 순간' 같은 제목의 유머글로 돌아다녔다.
심지어 훗날 SBS에서는 직접 이 장면을 두고 시청률 떨어진다 꽉 잡아!!! 끄아아아아아아!!! 같은 자학개그를 하기도 했다. 다만, 진짜로 2부가 1부에 비해 반토막 난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단락을 참조.
2부 시청률이 더 떨어진것은 위에 언급한것처럼 더 이상 상대 보스 격파 액션 드라마가 아니게 된것에 있다. 2부는 드라마의 분위기와 내용이 액션 활극에서 정치극으로 노선이 180도 바뀌었다.
실제로 2부의 시작인 51화의 시청률은 39.3%로 1부의 정점인 장충단 사건 이후 내려간 1부 막판의 시청률과 비슷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해방 직후의 이념 대립과 정파 싸움 같은 복잡한 서사가 계속 이어지자
1부의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던 20대 이하 시청자들의 상당수가 이탈해버렸다.
물론 이렇게 바뀐 2부를 더 좋아해서 챙겨보기 시작한 중·장년층 위주의 시청자들도 있긴 했지만, 이탈한 시청자들을 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2부의 시청률은 25% 정도로 내려갔다.
물론 정치극이 20% 중반대 시청률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보자면
상당한 수준이긴 했으나, 1부의 시청률이 워낙 높았던지라 그에 비교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다. 특히 1부 최정점 50%를 마치 1부 평균인것처럼 떠들면서 2부가 시작 부터 끝까지 25% 가 되었다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 오해를 샀다.
물론 그렇다고 야인시대가 2부부터 완전히 쇠락한 것은 아니었다. 10 ~ 20대들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갔지만 다른 코어층인 30 ~ 40대들의 인기는 건재했고, 오히려 정치적인 얘기로 접어들자 50대 이상 시청층이 유입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1부보다는 시청률이 많이 떨어진 관계로 SBS가 이 시점부터 야인시대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더 이상 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당시 시청률로만 따져도 중박 수준은 분명했고, 애당초 SBS가 야인시대를 정말 실패한 프로그램으로 단정 지었다면 작가가 완성도를 위해 연장 방영을 요청해도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2부는 오히려 세월이 지나 엄청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야인시대 종영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누구도, 심지어 제작진들조차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고자라니로부터 시작된 야인시대 합성물의 유행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가 크게 회자된 것을 시작으로 온갖 패러디 합성물들이 범람하면서 야인시대는 하나의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았고,
심영물이 흥하면서 과거 야인시대가 방영할 때 10대~20대였던 이들이 나이 들어 야인시대 2부를
다시 접한 이후 비록 실제 역사에 비해 MSG가 상당히 가미되었다고는 해도 해방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과 그에 따른 정치권과 암흑가의 결탁 등을 다룬 2부의 진면모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관련된 상세 내용은 뒷 문단에서 후술한다.
사실 제목만 똑같을 뿐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1부는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뉘어 있고 우직한 성격의 주인공이 하나하나 장애물을 격파해나가는 느와르 액션, 일제 항거, 블록버스터 활극이다.
또한 악역들도 격파당하면 패배를 인정하고 조용히 퇴장하는, 마치 게임 같은 형태다. 그러나 2부부터는 주인공의 절친 중 한 명이 주요 악역으로 등장하며 서로의 애증과 배신, 정치적 이념의 대립과 이로 인한 갈등 등 복잡한 인간관계가 맞물리며,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한 요소까지 아우러지며 복잡한 갈등 관계가 일어나는 보다 현실적이고 냉혹한 정치극이다. 물론 2부에서도 전설의 고수인 시라소니나 금강 같은 무협지적 요소가 있지만,
이들의 캐릭터성이나 엮이는 스토리 자체가 단순히 싸움 잘하는 것 외에 더 입체적이 되었다.
사실 야인시대는 원래부터 혼란한 근현대사를 다루기 위해 기획된 역사극이었고, 이런 측면을 더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었기에 신나는 액션 활극인 1부는 일종의 양념 역할에 가까웠다.
당시 사극에서 하던 것처럼 중년의 유명 배우(김영철)을 20대 초중반 시절 김두한(2부 시작)부터 역할을 맡기고 아직 젊고 많이 유명하지 않았던 안재모를 청년 역할에 캐스팅한 것만 봐도 어느 부분을 강조했는지는 명확하다.
그런데 의외로 단순한 주먹싸움 얘기가 인기를 끌자 본말이 전도된 것. 사실 김두한의 이야기도 단순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구 깡패 출신' 정치인의 이야기라 유명해진 것도 있었으며
기본적으로 폭발적인 액션과 잘생긴 스타 안재모가 대단한 연기와 카리스마를 선보여 남녀노소를 열광시키기 좋았기에 1부가 더 인기를 끈 것은 사실 당연하다. 심지어 소프라노스나 피키 블라인더스 등 야인시대랑 비슷한
외국 드라마에 대한 소개 중엔 외국판 야인시대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다.
6. 인터넷 문화
야인시대는 컬트적인 부분에서도 대한민국 드라마史에 엄청난 한 획을 그었다. 합성에 써먹기 좋은 요소가 워낙 풍부해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합필갤은 독창적인 야인시대 합성물을 쏟아내며 영상 합성 문화를 주도했다.
비록 내가 고자라니 떡밥이 잠시 식으면서 합필 갤은 급격히 몰락했지만, 영상 제작자들은 활동 무대를 유튜브로 옮기면서 다시금 야인시대 합성물 흥행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인터넷 문화로 시작한 "내가 고자라니" 열풍은 역으로 그 야인시대를 만들어낸 본진인 지상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출연 배우들도 TV 프로그램, 광고, 유튜브 출연 등이 늘어나 다시 주목받았다.
인터넷에서는 야인시대 방영 20년을 넘어선 와중에도 관련 합성물이 꾸준히 생산 및 소비되는 중이며, "내가 고자라니", "사딸라",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등의 명대사 역시 유행어로서 생명력을 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이 영향으로 야인시대 방영 당시에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기억이 없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까지 야인시대는 단순한 옛날 드라마 그 이상의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2부 방영 당시에는 신나는 액션은 줄어들고 고리타분한 정치극만 나온다며 외면했던 당시의 어린 팬층이, 나이를 먹은 후 내가 고자라니의 열풍을 타고 원작을 정주행하면서 2부 내용을 재평가하는 등,
여러모로 오랜 세월을 돌아온 역주행까지 불러일으켰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2부도 나름 볼만하다.", "2부도 의외로 재미있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라는 식으로 뒤늦게 2부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후기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오히려 뻔한 패턴의 방식으로 진행된 1부와는 달리 2부가 더 재미있다는 반응도 나오는 편이다. 이후 오상사 역의 배우 라재웅은 유튜브 채널 「오상사가 간다」를 개설해, 과거 「야인시대」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조병옥 역의 김학철 또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여러 심영물에 댓글을 남기며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김두한 역의 안재모를 주연으로 문영철역의 장세진, 박인애역의 정소영, 쌍칼, 김영태 등이 1부의 배우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제작되고 있는 유튜브와 카카오티비 시리즈인 킹두한TV 「야인 이즈 백」 을 통해 이번에는 1부가 재조명되고 있다.
밈으로써 개그성만이 넘치는 2부에 비해 이쪽은 오히려 김두한과 박인애의 투샷을 보고 추억에 젖어 1부를 재탕하러 가는 케이스가 많은 편이다.
「야인 이즈 백」은 짧은 맛보기 버전은 유튜브, 풀버전은 카카오티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저 5명 외에도 미와, 가미소리, 하야시, 시바루역을 맡았던 그때 그 시절 배우들이 합류해 빠른 조회 수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종영한 지 21년이나 지난 드라마의 거대한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22년 추석 연휴 동안 스브스 옛날 드라마 유튜브 채널에서 전화를 스트리밍 해줬는데 20년 전 드라마임에도 최저 2,000명 후반 ~ 최대 6,100명의 시청자 수를 꾸준히 유지하며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인기는 2024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최고점일땐 무려 7천명을 찍었다.
7. 몽골, 북한, 일본에서의 인기
2004년 몽골로 수출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무려 시청률 80%라는 믿을 수 없는 대기록을 세우고, 주연인 안재모는 나차깅 바가반디 대통령에게서 국빈으로 방문 초청을 받기까지 하였다.
# 장정들이 활극을 펼치는 모습이 몽골 정서와 잘 맞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야인시대의 인기로 몽골에 '김두한' 및 '야인시대'라는 이름의 음식점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런 한류 문화 등 한국의 몽골 진출은 몽골이 한국과 유사한 인프라를 갖추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북한에서도 중후반부의 반공성향에도 불구하고 몰래 보던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야인시대를 보다가 간부에게 들켜 총살형을 당한 주민이 있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는 걸 보면 역시나 북한 측에선 대대적으로 금지한 듯. 당연하게도 애초에 북한에선 예술작품 또한 체제를 선전,
찬양하는 도구이기에 해외, 특히 남한의 작품, 그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열람 혹은 청취하는 것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고위 간부들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했고,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야인시대의 장르가 장르인 만큼 눈감아주긴 힘든 상황이었을 듯.
김일성이 북한을 자신의 군대로 해방시켜 8.15 광복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식의 정치 선전과도 다르고,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사람들의 행적을 너무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지금으로 따지면 북한 땅 출신인 시라소니가 대놓고 기독교에 귀의하며 회개하려는 모습, 특히 인민재판을 묘사하는 부분은 고위 간부조차 드라마에 묘사된 가해자들의 후예인 만큼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맹원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현재의 북한에도 존재한다.
일본 KNTV에서도 『野人時代 -将軍の息子 キム・ドゥハン(야인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자막 방송되었다.
어지간한 외화는 전부 더빙해서 들여오는 일본의 사정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1부가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터라 반일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때문에 흥행을 기대치 않고 자막판으로만 방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방영분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원판과는 다른 BGM이 쓰였다.
8. 비판
분명히 드라마상 각색된 건달들의 일화를 실제인 것인 양 믿는 바람에 그들의 미화되거나 영웅화된 내용을 고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시시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후로는 조폭미화물들이 줄줄이 퇴짜를 맞게 되었다.
야인시대 합성물이 고인드립 논란이 있음에도 아무도 이를 비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깡패에 불과한 사람들을 좀 희화화한다고 따지면 조폭 실드 친다고 역으로 욕먹기 딱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국의 각급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표적으로 여러 명이 빙 둘러싸고 극 중의 싸움 장면을 재현하거나, 단체로 패싸움 시늉을 하는 것이다.
가끔씩 신문지를 말아 일본도라 하며 혼마찌 패거리를 흉내 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싸우는 시늉하면서 노는 것으로 끝내지 못한 경우도 있다. 2002년 12월 광주에서 중학생 15명이 드라마를 모방하여 패싸움한 사건이 일어났다.
9. 촬영지
드라마 야인시대의 촬영을 위해 SBS는 2001년에 대규모 오픈세트장을 건설할 것을 계획하였다. 부천시에서 22억의 자금을 전액 지원하여 부천 상동에 건설되었다.
2002년 3월 5일에 개장한 야인시대 세트장은 메인 건물인 화신백화점 세트장과 함께 우미관과 종로경찰서는 물론, 청계천 움막과 수표교, 원노인의 설렁탕집인 사동옥, 김두한 패거리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인
종로회관, 나미꼬가 운영하는 카페인 사쿠라 카페, 그리고 백병원(!) 등의 건물이 설치되었다.
1930년대 종로거리를 다니던 전차 2량을 제작하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화신백화점 건물과 전차 2량이 동시에 움직이는 종로거리의 풍경은 이 세트장의 특징이자 대표적인 풍경인 셈이었다.
방영 당시 야인시대 출연자들이 인천시 선관위의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홍보했다.[75] 후에 야인시대 세트장 옆으로 〈하류인생〉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이 설치되면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었다.
부천시 야인시대 세트장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애초에 오픈세트장으로 설계되어 일반 관람이 가능했고,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지리적인 이점으로 부천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기도 했었다.
한창 인기였을 때는
야간개장을 하여 화신백화점 세트를 비롯하여 불 밝힌 화려한 종로거리를 걸으면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을 정도. 2004년에는 이곳에서 토이스타에서 신제품 홍보 이벤트로 서바이벌 게임을 개최해 당시 서바이벌 게임 유저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종영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진 영향에 원래 세트장이라는 특성상 콘크리트로 지은 영구건물이 아니라 목조로 만든 가건물이 대다수였으므로 빠르게 노후화되면서,
태풍 피해와 화재 등으로 인해 2011년 8월 4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하였고 2012년 3월 5일에 철거되었다.
철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세트장 건물 5동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철거 후에는 캠핑장으로 조성되었는데 '야인시대'라는 명칭은 유지하여 야인시대 캠핑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세트장을 철거하면서 기념비석을 세웠고, 당시 촬영 세트장 건물 일부와 전차 2량, 보신각, 혼마치 입구 간판을 남겼다.
한국만화박물관 뒤편 한옥마을과 그 일대 농지근방(부천 문화동산)이 원래 세트장의 위치였던 것. 2018년 초에도 혼마치 입구 간판 등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안내하는 야인시대 세트장 흔적
2020년부터 야인시대 세트장 자리인 부천 상동 영상문화 단지의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세트장의 흔적도 근시일 내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차 2량은 2017년부터 인근에 위치한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입구로 옮겨져서 보존 중이었으나 노후화로 인해 2023년에 철거 및 해체되었다.
10. 유튜브 공개
2019년 10월 18일, SBS DRAMAi CLASSIC에서 실시간 재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64회, 65회가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방송되었는데 심영이 나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시청자 수가 폭등하고 채팅창이 들썩였으며
그리고 2019년 12월 3일 새벽 2시에 전설의 야인시대 64화가 방영되면서 채팅창이 폭☆8했다. 그 장면에서는 3,000이 넘는 시청자 수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64화 이전에도 심영이 나오거나 필수 요소가 등장할 때마다.
채팅창이 들썩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채팅창에서 저속한 대화를 나누는 문제가 발견되면서, 11월 11일에 채팅창 운영을 중단했다가 11월 20일에 재개했다. 관리자는 채팅창에서 저속한 내용 등을 작성할 경우 채팅창 이용 금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2부 첫 공개 이후 엔딩 시그널이 나올 때마다 채팅창에서 떼창을 하는 경우도 보이고 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공지도 없이 방송 펑크가 났으나 단순한 지각으로 12시 25분 정상적으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제대로 「야인시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심영물로만 알아온 사람들이 전편을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소스들이나 별명들이 붙기 시작했는데 2부 후반부 항상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명동파들이 한데 모여 사건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반복되면서 '명동TV : 정치평론'이라고 불린다던가 2부 공산당 세력 중 김해숙을 보고 '공산당 북화요비'라고 이름 붙이곤 했다.
2020년 3월 31일 오후 6시에[98] 스트리밍이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냥 무한 반복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채팅창 관리를 직원이 해야 하며, 기타 걸림돌이 있어서 광고도 어렵고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라 한다.
이후로 해당 채널에서 공식 심영물을 몇 차례 업로드하기도 했으며, 구독자 이벤트로 야인시대 관련 문구가 적힌 굿즈를 배포하기도 했다. 문구는 각각 오렌지병, 폭★8, 야인.
2022년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스트리밍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오후 2시부터 새벽 2시까지 12시간 동안만 진행했지만 4일차인 목요일부터 24시간 내내 스트리밍한 끝에 8월 7일 자로 최종회까지 스트리밍을 진행할 수 있었다.
# 이번 스트리밍에도 여러 가지 드립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드립은 신마적 옆에서 오른팔 역할을 하는 부하가 손흥민을 닮았다 하여
'손흥민', '짭흥민' 이라는 드립과 종로 경찰서 형사 김태서는 김조한을 닮아 '김조한' 드립이 붙었고, 거기에 파생되어 미와 수하의 문달영, 오무라, 김태서 이 3인조를 '종로 솔리드'라고 부르기 시작한 드립이 등장했다.
2부에서 등장하는 국회의원 장경근의 배우 김강산 씨는 원래 직업이 성우로써 mbc에서 수입 방영한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악역이자 최종 보스 가고일 역을 맡아서 실시간 채팅창에 가고일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일요일에 4.19혁명과 이정재 사형 장면, 마지막 회 국회 오물투척 사건에서 최대 시청자 수 4,500명을 기록했다.
2022년 9월 7일 오후 5시부터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 123화 초반에 최대 6100명을 기록했다.
2023년 4월 6일 오후 3시, 오랜만에 전 회차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
2023년 5월 30일에도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
2023년 12월 22일부터 총 2회 연속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
2024년 7월 5일부터 방송사 최초의 AI 업스케일링 1080P로 진행된 리마스터 버전 라이브로 총 3회 연속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
2025년 2월 28일부터 삼일절을 기념하여 작년과 똑같이 연속 24시간 스트리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