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중 무역규제가 이런식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미국채 매각을 지속적으로 해 미국경제를 고금리의 장기화를 유도하는 파탄으로 몰면서 글로벌 반도체 강자 TSMC의 기술과 장비를 취하는 수밖에 없는 대만 침공이다... 미국은 이것을 막기 위해 대만침공시 전면전을 선택하지는 못해도 그대로 당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사전에 이것을 막아보려는 갖은 회유책을 쓰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적으로 월가내 금융계 인사들과 산업계 CEO들한테도 대중 무역규제가 너무 과하다는 압력을 계속받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는 중국의 그간의 미 물가 안정화 기여를 무시하는 이런 규제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압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며 이것이 미국채 매각과 함께 고금리 장기화를 가져올 것이며 연준이 할 수 있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 산업계 수장들은 이런 식의 무역규제가 중국의 주요 산업에서의 외산 침투를 불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국산화 대체를 가속화시켜 커다란 시장 하나를 잃게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을 원유말고는 수출/수입이 필요없는 독자적인 산업발전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자충수가 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인도나 베트남, 멕시코가 대체할 것이라는 미당국의 주장과 달리 미 산업계 수장들은 이곳에서도 중국의 영향이 중동에서와 같이 똑같이 발휘될 수 있으며 현재 미국의 이 규제에 반감을 갖는 브릭스는 아예 중국편에서 일을 도모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내 볼때는 한국과 일본도 결단코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 무역규제에 동참하는 이런 갈라치기에 협조한다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2016년 사드설치이후 수 년간 기백조원의 피해를 입고 있는 한국은 특히 이 사안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사안이다... 특히 이것이 정치/군사적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시 연결된다면 우린 중국시장을 아예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난 미국이 대단히 큰 대중 무역규제로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에서 회담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양국 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대응 등을 논의했다.
혈맹이라는 미명하에 한국경제는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지들 또한 국가부채, 정부빛에 허덕이면서 여전한 달러화 패권에 달러화 강세는 유지하고는 있는데, 미국은 자체가 부실 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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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출경기 또한 양키 코쟁이들이 중국을 계속 옥죄고 있는이상 중국의 부활없이는 개선되지 않는다. 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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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한국경제의 주력 수출경기는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고, 내수 경기 활성화라도 바라봐야하는데, 이것 또한 유커등 중국의 중추절·국경절 황금연휴에 의존해야할 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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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주말 아침에 주요 5개 SNS에 올린 코멘트입니다...
"오늘 그 직접 개입형 과외서비스 이용자들인 부외계좌 고객들과의 추계운용 주간모임이 있는 날인데 또 쉬네요~~~ 전체회원들을 관리하는 총회장, 단톡방장, 모임총무님과 전화부터 했고요^^ 지난주부터 아니 지난달부터 장세/시황도 안좋고 추석이다 뭐다로 주간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토요일이 많네요^^ 뭐 전체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주중 투자수익률 제고이니 주말은 놀러들 다니시라 냅둬야죠~~~^^ 지난주부터 3주간 단풍놀이철입니다~~~~~ 게코(Gekko)"
[속보] "바이든·시진핑, 내달 미국서 정상회담 개최 합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성사됐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AP 통신이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27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중 양국 정상은 다음달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연합뉴스 등 국내외 언론에 따르면 백악관은 27일(현지시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 회담 결과 자료에서
“양측은 이 전략적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회담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포함해 고위급 외교를 추가로 추진하고자 하는 바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도 이날 브리핑에서 양측이 “회담 성사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하고서 “우리는 그런 회담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이 회담 성사 여부를 재차 질문하자
“공개 발언이라 조심스럽다”면서 “중국 지도부는 종종 일정이 훨씬 임박해야 (일정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중국이 그런 발표를 할지, 언제 할지는 중국측에 맡기겠다”고 답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별도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다음달 14일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한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과 왕 부장은 미중 양자관계 주요 현안,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양안 문제 등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이며, 실질적인 대화를 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남중국해서 중국의 위험하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대만 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왕 부장은 설리번 보좌관과 약 3시간 회담에 앞서 전날과
이날 오전에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6시간 넘게 대화했다. 고위당국자는 블링컨 장관과 왕 부장이 “모든 범위의 현안에 대해 소통 채널을 계속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강원도민일보 윤 종진 기자
[더 머니이스트-홍 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사회주의 기초 다진 중국의 '제1차 5개년 경제계획'
"중국 공산당, 소련 방식으로 경제 접근"
"농업 효율화 중공업·자본 집약적 공업 발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과도기 정부 행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행정위원회 산하엔 재정경제위원회가 있었다.
이 조직은 국가 경제를 계획하고 건설 관리를 담당했다. 천윈과 보이보의 주도 아래 재정경제위원회는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구축에 핵심적이고 독점적인 역할을 했다.
이 위원회의 우선 목표는 국가 경제 질서 복원, 가격 안정, 화폐 안정, 계획된 경제의 관리 메커니즘 설정, 그리고 '제1차 5개년 계획' 준비였다.
1953년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주요 혁명 세력의 지휘 아래 중국은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구축할 준비가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구축과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련의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앞서 소련은 기업의 국영화, 대규모 집단 농업 그리고 중앙집중식 경제 계획을 채택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방침은 '제1차 5개년 계획(1953- 1957)'에 반영됐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제1차 5개년 계획은 중공업과 자본 집약적·기술 기반 공업을 발전시켜 경제성장률을 높이려 했다. 소련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 관료들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줬다.
대규모의 소련 엔지니어, 기술자, 과학자는 중국에서 새로운 중공업 시설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데 일조했으며 중국은 소련에서 공장설비, 중장비를 수입했다.
처음부터 소련과 중국 공산당이 친밀했던 것은 아니다.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5년 소련은 중국 국민당 정부와 중소우호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군을 몰아내고 만주로 진군한 소련군은 도합 50억달러에 달하는 공업시설과 금괴 그리고 8억5000만위안의 만주국 화폐를 몰수했던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소련은 외몽골과 신장에 괴뢰정부를 수립해 중국 정부를 자극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과 정치·외교적 문제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직후인 1949년 12월 마오쩌둥은 스탈린의 70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만나주지 않다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면담을 했고, 중국과 소련은 원조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 결과, 1950년 2월 14일 중국과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는 중국과 소련이 서로 경제 지원을 제공하고 필요한 경제 협력을 수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조약에 따라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3억달러의 차관을 받았고, 공장설비 및 중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중국은 외몽골 독립을 인정해야 했고, 신장의 광산을 소련과 공동으로 개발해야 했다. 또 만주의 철도이용권, 뤼순·다롄의 사용권을 소련에 제공했다.
다만 소련의 경제원조로 인해
중국은 첫 5개년 경제 발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소련의 원조를 받는 동안 중국 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활용해 기업 소유주들이 기업을 국가에 판매하도록 설득했다.
1956년까지 중국 내 대부분의 대규모 상업 및 산업이 국유화됐으며 도시의 거의 모든 사적 사업소유권이 사라졌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 구축 작업은 단기적으로 빛을 발했다.
1955년 중국의 국가 생산력은 31% 증가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사적인 시장 활동은 암암리에 명맥을 이어갔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