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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코인터내셔널(GI)

그 "녹두꽃" 마지막 재방송중 - 게코(Gekko)의 기해년 정기여름휴가 일정을 공지합니다...

 


 아래는 어제 이 글관련 주요 6개 SNS 코멘트들입니다...


 


 "주말만 오는 여대생 청소 알바생과 아내의 진두지휘아래 대청소 끝내신 가정부 아주머니는 주말 쉬시러 가셨고, 딱 12시간 주말 첫 폭잠자고 일어난지 1시간정도 됐네요~~~^^ 늦둥이 서일이 배위에 있는거 보고 눈 떴습니다… 그나저나 아내 완전히 출산에서는 벗어났는지 이 ‘짚와이어’ 타보고 싶다네요"


 


 "기해년 정기여름휴가자중 일본을 선택한 17명 자진 철회중… 전 대일본성토 청와대 청원게시글 준비중입니다…!!!"
http://blog.daum.net/samsongeko/8250


 


 "게코(Gekko)의 기해년 정기여름휴가는 아버님 기제사인 7월30일후 31일 하루 출근후 8월1일부터 8월11일까지 10박11일간이고 게코인터내설(GI) 전체 임직원들중 12% 정도인 천주교 신자중 6명과 떠나는 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입니다. 아내와 늦둥이 서일이는 국내에 있고 10년간의 냉담을 푼지 얼마안된 세례명 바오로 저 혼자갑니다… 아들놈한테 너무 가혹한 처사라 가족들과의 휴가는 광복절 전후로 따로 갑니다… 게코(Gekko)"


 "요즘 저희 내외가 즐겨보는 드라마입니다~~~^^ 화요일로 이동한 채널 A ‘서민갑부'는 제가 주로 보고, 저는 보기 힘든 KBS2의 '생생정보'는 아내가 주로 본다면, 이 드라마는 재방송이라도 같이 보는 편, 어제 못봐서 현재 시청중~~~ 전 동학혁명의 발상지 전주 모악산도 가봤고요~~~~~"


 "저녁먹고 다시 늦둥이 아들놈 안고 아내와 거실 대형 TV로 “녹두쿛” 47회와 최증회 보고 있는 중~~~^^ 아싀운데요~~~ 구한말 동학혁명, 전 봉준을 그린 좋은 시대물이 아쉽게도 끝나네요~~~~~ 그간 재밋게 봤는데 말입니다. 아내한테 모악산도 등산코스 있으니, 다음 월산해믄 이곳으로 가자는데까지 승인받았슴~~~^^"


 


 "“봉건제도를 타파하려 했던 동학의 지도자로 별명은 ‘녹두장군’. 전라북도 고부군의 잔반 출신으로 1890년 동학에 입교하여 1892년 고부지방의 접주로 임명되었으며 제1차 농민전쟁 당시 폐정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제2차 농민전쟁에서는 친일적인 개화파정권을 타도하고 전국 차원에서 폐정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의 변혁 의지는 일본군 의해 좌절당했지만 조선의 봉건제도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실증했고, 민중을 반침략, 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전 봉준역의 최 무성씨~~~^^ 저번에 아내가 그러데요^^ “여보, 당신은 죽으면 안돼요~~~^^"를 사극대사처럼 이야기해서 저 이랬네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라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처럼 말이죠~~~~~"

 

 


 모악산

 母岳山


 


 높이 795.2m. 노령산맥의 말단부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선각산·국사봉 등이 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모악이라고 했다.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 저수지에 흘러든 뒤 삼천천을 이루어 전주시로 흐른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원평천은 동진강에 흘러들며,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 되기도 한다.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화강암·석영반암·대보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이 몇 군데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 풍기의 금계동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당이라 하여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


 1971년 12월 이 산과 주변지역 일대를 포함한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쪽 기슭에 금산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는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노주(보물 제22호)·석련대(보물 제23호)·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5층석탑(보물 제25호)·석종(보물 제26호)·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당간지주(보물 제28호)·대장전(보물 제827호)·석등(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금산사의 출입구이기도 한 홍예석문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귀신사에는 대적광전(보물 제826호)·3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그밖에 대원사·심원암·수왕사 등도 자리하고 있다.


 봄 벚꽃, 가을 감나무 숲이 운치를 더해주며, 금산사-심원암-산정-수왕사-원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관광객과 등산객이 많이 찾아온다. 일대에서는 10월에 민속축제인 김제 벽골문화제가 열리며,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편익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전주와 김제 중심시가지에서 금산사까지 시내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동쪽 산록으로 전주시와 완주군을 연결하는 국도가 나 있다.

 

 개설


 모악산은 동경 127°01′00″, 북위 35°45′30″에 위치하며 높이는 795.2m이다. 노령산맥의 서단부에 위치하며 호남평야와 전라북도 동부 산간 지대의 경계가 된다. 1971년 12월모악산을 중심으로 면적 42.44㎢가 모악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금산사지(金山寺誌)』를 보면 ‘엄뫼’라는 말이나 ‘큰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자연환경


 모악산에는 산금(山金)이 있고, 주변의 금산면·금구면을 흐르는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의 하상(河床)에는 사금(砂金)이 있다. 주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이나 지능선이 동과 서로 뻗어 있다. 동쪽 사면은 만경강의 집수역(集水域)으로 계곡의 물은 구이면의 전주저수지에 흘러들어 전주 서쪽을 흐르는 삼천(三川)이 된다.


 서쪽 사면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원평천 집수역이 된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북쪽 금구면의 두월천과 남쪽 원평천은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된 벽골제(碧骨堤)의 수원이 되었다. 모악산은 우리나라 남부의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며, 맑은 날이 많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식물분포학상으로 온대형에 속한다.


 식생은 대체로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가 우점하고 정상부에 아교목층의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며 저지재는 소나무가, 계곡에는 층층나무와 느티나무 군락이 분포한다.


 형성 및 변천


 암석은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화강암(片麻狀花崗岩)으로, 쥐라기에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의 석영반암(石英斑岩)·석영 등의 관입을 받아 북동∼남서 방향의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다.


 현황


 이 산은 저평한 호남평야에 우뚝 솟은 산이어서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다. 산의 이름도 ‘엄뫼’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모악이 되었다.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신라 불교의 5교9산(五敎九山)의 하나이며,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로 지정)은 겉보기에는 3층이나 실제로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의 미륵불상은 높이가 11.82m나 된다.


 절 안에는 금산사노주(보물 제22호)·금산사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금산사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금산사오층석탑(보물 제25호)·금산사방등계단(보물 제26호)·금산사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금산사당간지주(보물 제28호)·금산사심원암북강삼층석탑(보물 제29호)·금산사대장전(大藏殿, 보물 제827호)·금산사석등(보물 제828호)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그러나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大寂光殿)은 28칸의 웅장한 목조건물이었는데, 1986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안에 있던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 불상도 소진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처영(處英)이 금산사에서 승병 1,000인을 일으켜 왜병을 무찔렀던 장거(壯擧)도 있었다.


 또한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무려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심원암(深源庵)·청련암(靑蓮庵)·용천암(龍天庵)·부도전(浮屠殿)·대원사(大院寺)·귀신사(歸信寺) 등이 있고 미륵신앙의 기도처가 곳곳에 있다.


 귀신사는 서쪽 사면의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것으로 676년(문무왕 16)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 절에는 대적광전(보물 제826호)·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미륵신앙이나 풍수지리설 등의 영향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집회소가 있다. 특히 금산면 청도리의 백운동은 모악산이 후천세계(後天世界)의 중심지라 믿어서, 1927년 이후 신도들이 집단 이주하였고 증산교(甑山敎)의 의식인 오대치성(五大致誠)으로 결속되어 종교취락을 이루었다.


 1976년모악산도립공원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숙박 시설과 토산품 가게의 집단화, 주변의 신흥 종교집단의 단속·철거 등이 이루어졌다. 봄철에는 금산사 입구의 벚꽃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