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베, 또라이 트럼프, 다시 스가... 올림픽 취소 관심없고... 난 또 또아리를 트는 일본 쪽바리들때문에 대일본성토 포문 시작이후 5차도 지나 6차를 준비중이다...!!!!!
https://blog.daum.net/samsongeko/10505
우린 4년간 또라이 트럼프한테 갖은 모욕과 멸시를 당했다...!!!!! 혈맹인 K-방역/진단 우수국가인 대한민국을 동방의 이스라엘급으로 대우하는지 지켜보겠다...!!!!!
http://blog.daum.net/samsongeko/10498
아래는 어제 올린 주요 5개 SNS 코멘트입니다...
"발렌타인데이 유래...
2월14일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렛이나 사탕 등을 선물하는 발렌타인데이다.
발렌타인데이는 그리스도교의 성인 발렌티노의 축일로 오늘날에는 영미를 중심으로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날로 알려졌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이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해졌다.
3세기경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당시 결혼을 통해 병역 소집령을 기피하려는 젊은이들의 행태나 군인들의 군기 문란 등을 이유로 금혼령을 내렸다.
이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 발렌타인이 황제의 결혼 금지령에 반대해 사랑하는 남녀를 교회로 불러 결혼을 성사시켜주었고 이 사실을 안 황제는 발렌타인을 처형했다. 성 발렌타인이 순직한 날이 바로 서기 269년 2월14일이다.
본격적으로 발렌타인 데이에 쵸콜렛을 주는 문화가 시작된 것은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발렌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쵸콜렛을 통해 사랑 고백 캠페인을 벌인 것을 계기로 정착됐다.
한편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네티즌들은 '요즘은 초콜릿보다. 와인이나 과일로 대체하기도 한다..."
"여직원들이 챙겨준 초코릿은 GI IR실장이 오후에 대표로 이 비지니스 스마트폰 가지고 오면서 갖다주었는데 땡기지는 않고요... 아내가 주간마감 다 쳤으면 토굴 서재에서 일찍 나오라네요~~~^^ 초코릿은 아니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준비중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입니다... 비대면 설의 비극이네요~~~^^ 게코(Gekko)"
2월 14일은 안중근의사 사형 선고날...
1910년 2월 14일...
어제는 안중근의사의 사형선고날입니다.
하지만 안중근의사의 사형선고날이라는걸아는분들은 많지않습니다. 편의점, 마트, 백화점 앞 진열대에는 형형색색의 초콜릿으로 가득합니다. 그 앞에는 초콜릿을 고르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2월14일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초콜릿 제조판매업자들의 상술을 떠나 이날 초콜릿을 판매하고 사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오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밸런타인데이에 앞서 ‘안중근 의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입니다. 지난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로 망국의 상황이 도래하자 안 의사는 구국의 방책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간 후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조선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처단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민족의 원횽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만주 하얼빈역의 플랫폼에 기차 한 대가 들어오자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그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이윽고 기차에서 긴 수염을 흩날리며 이토 히로부미가 내렸고, 의장대의 팡파레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 천지를 뒤흔드는 총성이 잇따라 울려 퍼졌고, 환영인파로 가득한 플랫폼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이토를 비롯한 일본 귀빈 네 명이 차례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군중 속에서 만세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조선 청년 안중근이었습니다. 그는 이토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후 권총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품안에서 태극기를 꺼내 ‘코리아 뷰레’(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습니다.
국권을 침탈한 원흉이었던 이토는 이렇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거사 후 러시아 군대에 압수된 권총과 안 의사의 권총 보관함. 일본인 소장) 이날 안중근은 총 일곱 발의 총탄을 발사했습니다. 이중 세 발이 이토의 가슴에 작렬했고, 나머지 세 발은 이토의 수행원들의 몸에 명중했습니다.
이토오의 왼쪽에 섰던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총영사 ‘가와카미 토시히코’가 오른 팔 골절 관통상을 입었고, 또 한 발은 이토의 오른쪽에 섰던 수행비서관 ‘모리 야스지로’의 왼쪽 허리를 관통하여 복부 피하에 박혔습니다. (안 의사의 총탄에 맞은 이토 히로부미의 피묻은 셔츠)
국내대신 모리의 곁에 섰던 남철도주식회사 이사 ‘타나카 세이지로’의 왼쪽 다리 관절이 관통되었으며, 남만철도주식회사 총재 ‘나카무라 제코’의 외투를 뚫고 총탄이 오른편 바지에 박혔습니다.
나머지 한 발의 소재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졸속 재판... 일본 각본대로 사형 선고...
이후 안 의사는 하얼빈의 일본영사관을 거쳐 여순에 있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에 이르기까지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는데요.
판사도 일본인, 검사도 일본인, 변호사도 일본인, 통역관도 일본인, 방청인도 일본인. 재판은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그들의 각본대로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 당시 일본인 변호사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징역 3년형이 적당하다고 변론했던 사실이 최근 확인됐습니다.
이토 살해 혐의로 기소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재판에서 일본인 변호사들은 재판부에 "안중근을 극형에 처하는 것은 오늘날 법의 목적인 형평성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일본)를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를 살해하려한 자도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고 (1904년 미국에서) 스티븐스를 죽인 암살자(장인환 의사)도 단지 25년형이 구형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처음부터 안 의사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중국 뤼순 감옥에 있는 안중근 의사 사형장)
안 의사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재판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에게 거사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구구하게 이유를 밝혀 목숨을 구걸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싫었습니다.
살기 위해 거사에 나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안 의사는 공소를 포기했습니다. 안 의사의 모친은 아들에게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안 의사는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 감옥에서 저술에만 힘썼습니다.
이곳에서 집필한 <안응칠역사>
게코(Gekko)의 논평 - 미국, 니들은 참견마라... 해방이후 20년간 일본편 든게 이 근본적 사단의 원인이니깐이~~~
http://blog.daum.net/samsongeko/8249
수의를 아들에게 보내는 어미의 마음
도마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의 어머니 '조마리아'
대한민국 국민 어머님의 편지,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 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 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거라."
* 조마리아 (조성녀 趙姓女, 1862. ? ~ 1927. 7.)
'안중근'은 어머니에게,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영웅이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2월14일입니다. 우리 모두 이 치욕을 잊지 말아야 대한민국은 영원히 굳게 설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평소에 안의사께서 청년들에게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자 자주 쓰셨던 글귀들입니다.
●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
을 바쳐라.
●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
이 글은 논어가 출처이고 추구집에도 있는데, 안의사께서 즐겨 쓰신 글이라 유명해졌습니다. 1910년 2월 14일, 대한민국 근대사 민족의 영웅 '도마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 입니다. 그런데 2월14일, 우리가 아는 '발렌타인 데이',
일본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우리 한테 얄팍한 상술로 초코렛을 주고 받는 날로 만든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많이 퍼날라 알리도록 합시다. 참 믿기 힘든 역사적 치욕입니다.
우리의역사,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바르게 가르쳐야 먼 훗날 후손들이 떳떳하게 우리의 역사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광복의 기쁨과 일제 암흑기의 아픔이 우리 역사의 한편 에 자리하고 있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월14일, 초코렛 대신 우리 아이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안중근 의사'님의 어록등을 알려 주도록 합시다. 죽어서도 나라와 민족을 지키시겠다. 하신, '大韓國人 安重根 義士' 님을 기립니다.
* 안중근 (안응칠 1879. 9. 2. ~ 1910. 3. 26. 황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