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millionaire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이 재명, 출마 출사표 던졌네요^^ 저는 "태정태세문단세~"가 생각나데요^^ 숙종/경종에 이어 영조/정조가 생각났고요... 실용주의라... 탕평이 우선돼야

삼손과 게코 2025. 4. 12. 16:06

 

중모질이 오 세훈은 불출마 선언... 하모질이 한 덕수 차출론...?? 여권은 그냥 대선후보 내지마라... 오늘은 고 김 대중 전대통령을 숙종에 고 노 무현 대통령을 경종에 비유해보자...

 

그 경종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았던 조선시대 최장수 통치 무수리 아들 출신의 영조가 되려나 아님 바로 실학구시의 그 실학사상을 계승한 정조가 되려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국민통합과 대협치를 이룰 탕평책을 우선시한 영조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바로 아무도 안 믿는 경제성장의 실용주의 사상부터 들이미네요...

 

하여튼 난 고려 현종이후의 부국강병의 그 100세 치세를 기다린다... 아래 대표적인 왕관련 영화는 어느 블로거(Bloger)의 글에 제가 첨부한 겁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왕과 관련하여 말입니다... 틈틈히 생각나시면 보시고요... 여하튼 조만간 우리도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흥선대원군과 강조를... 아니 고려시대 중랑장 후손인 충무공 이 순신이상으로 고려시대 양 규 장군과 강 감찬 장군을 알아야... 국짐은 정당해산만이 답.

https://samsongeko1.tistory.com/13286

 

혈맹(?) 미국 이상으로 왕서방 중국(그 동북공정부터 백두산까지... 이들의 주요 역사 왜곡 문제는 내 통일후에 집중 성토한다... 사실 만주는 원래 고구려 땅이며 한반도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이곳도 한민족이 주인이였던 우리 땅... 그러나 아직은 참는다... 분단된 국가의 남한인으로서... 내가 중국 사대주의자라는 일부 비판이 있는데 아님을 강조한다.)도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 재명 대표의 인식은 옳으며 우리와 (양안)대만문제가 뭔 상관인가.... 주변 4대강국은 중립으로 다스려야 한다... 강력한 1억명 내수 경제 체제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북한도 전쟁이 아니고 평화로 자꾸 유도하여 결국 내부 분열에 의한 점진적 통일 방향으로 가야한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근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의 인구 2500만명과 재외동포까지 합쳐 1억명은 있어야 우리는 부국강병의 강대국으로 올라설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기본적인 외교는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주변 4대강국을 우리의 입맛대로 조절하는 중립국 입장으로 기여코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남한의 소멸론이 부각되는 현 시점에서도 그렇고 가까운 미래 보호 무역주의 심화와 신냉전에 따른 자국 중심주의의 폐쇄경제가 대세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외교정책의 방향은 이것이다... 가까운 미래 북한은 이렇게 예상하고 있는 중이다... 3대째 독재체제로 움직이고 있는 김 정은이 마지막이다... 이 양반 사후전 분명히 내부 붕괴가 일어나고 우린 급속하게 진행될 서독의 동독 흡수합병식 통일에 이제부터라도 대비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양키 코쟁이들부터 왕서방들이 보일 거부 반응과 일본과 러시아의 방해공작을 막아낼 수 있는 외교/국방 정책을 지금부터 수립해야 하며, 미국한테서는 정말로 전작권부터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한반도 남한의 자주적 방위를 방위비나 띁어내 자국 방산업체들의 글로벌 장악을 유지하려는 미국 주도하에 냅둬야 하는가... 양키 코쟁이들한테 언제 돌려줄것이냐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우린 전작권도 필요하며 우주방위청 이상으로 주변 4강국을 다스릴 항공모함 도입도 필요하며 필요시에는 파키스탄도 가지고 있는 핵무장도 원한다... 이 아침 강력한 민족주의자이자 강성 진보주의자인 게코(Gekko)의 대북관과 외교관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부합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있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재명이라... 이 양반 뒤에 반드시 내 외교(국방)관에 부합하는 강력하고 진정한 진보성향의 인물이 나올 것이다... 그것도 전라도에서...

 

 

조만간 대종영할 예정인데, 난 아직도 강조의 마지막 일성이 메아리친다... "(야만인이 아니고) 난 고려의 신하다..." 이번에 말이다. 이 성계와 강조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204

 

조선조 사림화(이들은 영정조(고 김 대중, 고 노무현) 치세기간동안 실사구시의 실학을 죽였고 그 동학혁명도 잊었고, 반일항쟁투쟁도 잊었으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도 잃어버린 역적들)돼버린 이 수박(비명이든 친문이든)들을 다 걸려내야 민주당원및 대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현재 전 민주당원들과 지지 국민들은 이 재명 대표하의 강력한 친정체제를 원합니다... 수렴청정한 천추태후나 김 치양같은 간신들에 휘둘려 무능력했던 목종이 아니고 강력한 군주 현종을 원하고요... 전 그 강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국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3각균형하의 자주적 나라를 건설하게 한 외교/국방의 강 감찬, 호락호락하지 않던 지방의 있는 자들이였던 호족들을 통제하는 5도양계의 전국적인 체계를 만들도록 도운 행정/지방제도의 김 은부같은 명신을 얻어 고려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고, 원성황후/원혜황후가 낳은 아들들로 덕종, 정종, 문종의 100년 치세를 열었듯이, 이 재명 사단안에서 없는 자들인 중하위층및 서민들과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중심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자주적 부국강병을 이루게 해줄 이들이 이 고 김 대중, 고 노 무현에 이은 이 재명 사단안에서, 강력한 진보/민주 성향의 대통령들과 명신들이 줄줄히 나오기를 원하고요... 이 재명을 반병신의 목종을 만들려는 모든 이들은 현재 강조(이 원종)역을 하고 있는 게코(Gekko)가 철퇴를 계속 내릴 것입니다... 제 생각에 좀 심하면 현종의 충신중의 하나인 친종장군 지 채문식으로 합니다... 평양성을 거란에 바친 간신 서경부윤을 철퇴로 죽이거나 발해 후손 대도수 장군을 사지로 몬 동북면도순검사 탁 사정을 죽이려한거나 왕을 겁박하고 반란을 일으킨 고려 중후반 대몽 항쟁에서 무능력의 대명사인 최씨 무신정권의 고조할아버지격인 최 질과 그 모사꾼 개경부윤의 목을 베듯이 저도 자객으로 기능하고자 합니다...

 

구정인사차 GI 큰 자본주 사무실을 예방했는데, 전 한과세트가 아니고 책을 구정선물로 주시네요^^ 역사관이 같은 제 블로그를 꾸준히 보고는 계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https://samsongeko1.tistory.com/13113

 

정통 진보주의자로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만약 한반도 통일을 고구려가 했다면, 역성혁명인 위화도 회군없이 고려가 800년이상 한반도를 지배했다면 역사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https://samsongeko1.tistory.com/12933

 

아따아~~~ 역시 고구려 후예들답군...!!! 내가 볼땐 미국과 우리가 똥줄타게 생겼다...

http://blog.daum.net/samsongeko/7951

 

 

  • 조선왕조 계보, 왕이름 순서 조선왕조 가계도
  • 조선 왕 순서대로: 묘호, 왕이름, 재위기간, 업적 정리 조선왕조 계보
  • 1대 태조(太祖) – 이성계
  • 2대 정종(定宗) – 이방과
  • 3대 태종(太宗) – 이방원
  • 4대 세종(世宗) – 이도
  • 5대 문종(文宗) – 이향
  • 6대 단종(端宗) – 이홍위
  • 7대 세조(世祖) – 이유
  • 8대 예종(睿宗) – 이황
  • 9대 성종(成宗) – 이혈
  • 10대 연산군(燕山君) – 이융
  • 11대 중종(中宗) – 이역
  • 12대 인종(仁宗) – 이호
  • 13대 명종(明宗) – 이환
  • 14대 선조(宣祖) – 이연
  • 15대 광해군(光海君) – 이혼
  • 16대 인조(仁祖) – 이종
  • 17대 효종(孝宗) – 이호
  • 18대 현종(顯宗) – 이연
  • 19대 숙종(肅宗) – 이순
  • 20대 경종(景宗) – 이윤
  • 21대 영조(英祖) – 이금
  • 22대 정조(正祖) – 이산
  • 23대 순조(純祖) – 이공
  • 24대 헌종(憲宗) – 이환
  • 25대 철종(哲宗) – 이변
  • 26대 고종(高宗) – 이희(혹은 이형)
  • 27대 순종(純宗) – 이척
  •  

 

 

조선왕조는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이 건국한 이래, 27대 왕(공식적으로 군(君) 칭호가 부여된 연산군과 광해군 포함)이 약 518년간 왕위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국방, 외교, 문화, 제도, 종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서 다양한 정책과 업적을 남겼습니다. 지금부터, 각 왕을 묘호(廟號)와 이름, 그리고 재위 기간과 대표적 업적 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재위 당시에는 ‘임금’이라 불렸어도 사후에 공식 왕칭이 박탈되어 ‘군(君)’으로 불린 사례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알려진 ‘1대부터 27대’ 순서로 안내해 드립니다.

 

아래 조선왕조 계보 목록은 단순히 왕명과 재위기간, 업적을 나열한 것이지만, 그 뒤에는 권력투쟁, 외세 침략, 문물 제도 정비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얽혀 있음을 염두에 두시면 조선왕조 계보를 보시는 데 있어서 더욱 흥미로우실 것입니다.

 

 

1대 태조(太祖) – 이성계

재위기간

  • 1392년 ~ 1398년

주요 업적

  • 위화도 회군(1388)으로 고려 멸망의 시발점을 마련하고, 스스로 조선을 건국
  • 한양 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왕도(王都)를 건설
  • 농본주의 정책을 강조하여 농업을 국가 기반으로 육성
  • 사대외교 노선으로 명나라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여 초기에 안정적 기반 확보

태조는 고려 말 무신으로 활약하면서 왜구를 격퇴한 전쟁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군공(軍功)과 정치적 능력, 그리고 당대의 혼란스러운 내부 정세가 맞물려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2대 정종(定宗) – 이방과

재위기간

  • 1398년 ~ 1400년

주요 업적

  • 사병을 혁파하고 삼군부에 편입하여 군권을 국가가 독점하도록 유도
  • 관제 개혁을 추진하여 태조 대의 기틀을 이어받음
  • 재위기간이 짧고, 정치적 실권은 사실상 셋째 동생인 태종(이방원)이 쥐고 있었음
  • 즉위 2년 만에 스스로 왕위를 이방원에게 선위(禪位)

정종은 태조의 둘째 아들로, 형제 간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왕위에 올랐으나 길게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병 혁파 정책을 잇는 등 국가 기틀을 다지는 일에는 일정 정도 기여하였습니다.

 

 

3대 태종(太宗) – 이방원

재위기간

  • 1400년 ~ 1418년

주요 업적

  • 왕자의 난(1차, 2차)을 통해 형제들을 제치고 왕위 확보
  • 호패법 시행, 신문고 설치 등으로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
  • 불교 억압, 유교 숭상(숭유억불)으로 유교적 통치질서 공고화
  • 사병 완전 혁파, 재상 권력 약화, 강력한 국왕 중심 체제 구축

태종 이방원은 조선 초기 권력투쟁의 최대 승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강력한 통치체제 덕분에 이후 세종이 안정적으로 치세를 펼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4대 세종(世宗) – 이도

재위기간

  • 1418년 ~ 1450년

주요 업적

  • 훈민정음(한글) 창제: 백성들의 문자 생활 혁명
  • 집현전 설치, 과학기술 발전(측우기, 해시계, 간의대 등)
  • 경연 활성화를 통해 유학과 제도 정비에 크게 기여
  • 북쪽 방어를 위해 4군 6진 개척, 남쪽 항구 개방(삼포 개항)

세종대왕은 조선의 대표적 성군(聖君)으로, 학문과 예술, 과학기술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글 창제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장 영실

蔣英實

 

경상도 동래현(현 부산광역시)의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관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태종에 의해 등용되었으며, 세종이 중용했다. 간의, 앙부일구, 옥루, 일성정시의를 제작하였다. 내가 장 영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고려말 최 무선이 개발한 화약에 의한 주화를 그의 아들 최 해선과 장 영실이 개량한 신기전때문이다. 최근 세종시절 군기감장이였던 박 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말이다

 

신기전()은 조선 세종때 개발된 고체로켓이자 로켓 추진식 화살 병기(화전), 또는 그 단위와 체제를 말한다. 고려시대의 화약로켓 주화를 개량한 무기였으며, 문종화차 보급으로 일종의 다연장로켓 야전포로 발전했다.

 

이건 명나라도 견제가 심해 그 당시 많은 외교적 압력이 들어왔었고 수백년후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신기전의 일부는 변이중이 개량했다는 설도 있다. 단순히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이 조선의 화포에 결정적 패인을 둘 정도로 이건 중요하다...

 

 

조선의 첨단무기 ''대신기전'' 개발자는 39세의 젊은 과학자…

 

세계 최초 2단형 로켓이자 세계최대의 종이약통 로켓화기이며, 세계적인 과학기술문화유산인 ''대신기전(大神機箭)''의 연구개발 책임자가 당시 39세의 과학기술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는

 

신기전의 전신인 주화(走火)와 신기전(神機箭)이 본격적으로 개발돼 사용된 시기인 세종 27년(1445년)부터 문종 1년(1451년) 사이의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한 결과,

 

''대신기전''의 연구개발 책임자는 1445년 당시 39살의 과학기술자 ''박강''이라고 밝혔다.

 

채 박사에 따르면, 박강은 세종 27년(1445년) 3월 39세 나이로 군기감정이 돼 2년 3개월 동안 업무를 수행하면서 최무선 때부터 사용해오던 주화를 개량, 소발화라는 폭탄을 부착하고,

 

200m를 비행할 수 있는 ''중주화''와 대형폭탄을 탑재해 500m 이상을 비행할 수 있는 초대형 로켓화기인 ''대주화''등을 연구개발했다.

 

채 박사는 또 박강이 개발한 중주화와 대주화를 비롯한 주화는 세종 29년 가을부터 12월초까지 3-4달 사이에 여진족을 격퇴시키기 위해 평안도와 함길도의 4군 6진 지역에 모두 2만 4천 930 개가 배치되며,

 

이 가운데 9천 개는 평안도 현지에서 박강이 제조했다고 설명했다. 박강이 재직했던 ''군기감''은 화약 무기를 연구 개발하고 생산하던 곳으로, 지금으로 치면 국방과학연구소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기관이다.

 

당시 박강이 개발한 ''중주화''와 ''대주화''는 세종 30년(1448년) 6월, 총통등록(銃筒謄錄)이 발간되면서 이름이 ''중신기전''과 ''대신기전'', ''산화신기전''으로 바뀌고,

 

그 규격은 1474년 편찬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기록돼있다.

 

채 연석 박사는 우리의 전통 로켓인 신기전에 애착을 갖고 4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2008년 원형 복원에 성공했으며, 영화 ''신기전''의 자문도 담당했다.

 

 

5대 문종(文宗) – 이향

재위기간

  • 1450년 ~ 1452년

주요 업적

  • 세종의 장남으로, 비교적 짧은 재위기간
  • 세종 치세의 기조를 이어받아 유교 이념 정치를 유지
  • 재위가 짧아 큰 업적을 남길 기회는 적었으나, 국가 기강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

문종은 병약한 상태였다고 전해져, 정치적 주도권을 완전히 쥐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어린 아들인 단종이 왕위를 이어가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하게 됩니다.

 

6대 단종(端宗) – 이홍위

재위기간

  • 1452년 ~ 1455년

주요 업적

  • 어린 나이에 즉위,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의 견제를 강하게 받음
  • 친정(親政)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축출
  • 훗날 복위 운동이 일어나지만,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함

단종은 조선 왕조 역사에서 어린 군주의 애달픈 이미지를 대표합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사후에 복권되어 제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7대 세조(世祖) – 이유

재위기간

  • 1455년 ~ 1468년

주요 업적

  • 계유정난을 통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
  • 경국대전 편찬 착수, 국조보감 편찬 등으로 국가 법전 체계 정비
  • 왕권 강화, 공신 포상, 관제 개편 등 강력한 통치 추진

세조는 즉위 과정이 잔혹했으나, 재위 중에는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법전을 완성해 조선 체제 공고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반대 세력을 숙청함으로써 피의 정치라 불리기도 합니다.

 

8대 예종(睿宗) – 이황

재위기간

  • 1468년 ~ 1469년

주요 업적

  • 재위 1년 만에 사망하여 짧은 치세
  • 세조 시기 추진되던 경국대전 완성
  • 병약했기에 큰 개혁보다는 선왕(세조)의 사업을 마무리

예종은 학문에 관심이 많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오래 왕위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경국대전의 형태를 확정하고 제도 시행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9대 성종(成宗) – 이혈

재위기간

  • 1469년 ~ 1494년

주요 업적

  • 경국대전 시행으로 조선 법제 확립
  • 훈구파와 사림파의 균형을 어느 정도 유지, 문물제도 정비
  • 홍문관(집현전의 후신) 활성화, 예학ㆍ경연 중시

성종 시기는 조선 초기 문치주의가 절정을 맞이한 시기입니다. 다만, 연산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 훗날 대혼란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도 평가합니다.

 

 

10대 연산군(燕山君) – 이융

재위기간

  • 1494년 ~ 1506년

주요 업적(혹은 실정)

  • 폐모 사건,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등 폭정으로 악명
  • 예술・문화 방면의 후원도 있었으나, 지나친 사치와 향락 탓에 여론 악화
  • 결과적으로 중종반정(1506)으로 폐위되어 군(君) 칭호로 강등

연산군은 극단적 폭군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예술 활동(장악원 운영 등)을 장려한 면도 있었습니다. 다만 폭정의 결과는 중종반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장녹수(張綠水)

숙용 장씨

우리가 실록으로 목도하는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앞뒤를 챙겨보면 뻔히 드러나는 사실에 대하여 입을 꾹 다물기도 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을 변명하기 위해 억지를 쓰기도 한다. 오늘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요부 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장녹수에 관한 기사에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중종반정을 일으킨 공신들은 명분 없는 자신들의 거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연산군을 중국 하나라의 걸왕이나 은나라 주왕과 같은 희대의 폭군으로 묘사하면서 임금의 광태를 부추긴 여인으로 장녹수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러 후궁 중 하나에 불과했던 장녹수를 몸을 파는 유녀에 천한 창기 출신이라 조롱하고 그녀의 행세를 침소봉대하여 마치 매희와 달기 못지않은 악녀로 매도했다. 실록을 살펴보면 장녹수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상이란 것이 당대의 권세가들이 누리던 그것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천민인 일가붙이를 면천시키고 관직에 오르게 했으며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노비를 잔혹하게 벌하고 닥치는 대로 재물을 모았다는 것인데,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듯 비천한 신분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은 후궁을 폭정의 조연으로 내세우는 방식은 훗날 벌어진 인조반정에서도 광해군김개시의 관계로 가감 없이 재현된다. 나라를 망친 폭군에게는 마땅히 음부요녀가 곁들여져야 하기 때문일까.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연산군 시대를 다룬 각종 문화상품에서 장녹수는 지독한 염정을 뿜어내며 임금을 걷잡을 수 없는 악행으로 치닫게 하는 팜므파탈로 그려지고 있다.

 

 

11대 중종(中宗) – 이역

재위기간

  • 1506년 ~ 1544년

주요 업적

  • 중종반정을 통해 연산군을 축출하고 즉위
  • 사림 세력을 중용했으나, 기묘사화(1519), 현량과 등으로 대립 반복
  • 조광조, 이황, 이이 등 인재들이 활약할 기반을 다지기도 함

중종은 폭정 이후 조선을 재정비하고자 했지만, 파벌 다툼과 사화가 계속되어 개혁이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교육 제도나 유학 기반 확립에 의의가 있습니다.

 

12대 인종(仁宗) – 이호

재위기간

  • 1544년 ~ 1545년

주요 업적

  • 중종의 장남으로, 재위 1년 만에 요절
  • 현량과 부활을 시도하며 사림에게 우호적 정책
  • 즉위 기간이 매우 짧아 눈에 띄는 업적은 많지 않음

인종은 명석하고 유학에 밝았으나, 건강상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에 명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외척 세력이 득세합니다.

 

13대 명종(明宗) – 이환

재위기간

  • 1545년 ~ 1567년

주요 업적

  • 어머니 문정왕후의 섭정으로 정책 주도권 부족
  • 을사사화, 을묘왜변(1555) 등 혼란스러운 시기
  • 허준이 활약한 시기이기도 하며, 의학 발달에 일정 부분 기여

명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어머니 문정왕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사림과 훈구의 대립이 이어졌고, 외세 침략 대응도 쉽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14대 선조(宣祖) – 이연

재위기간

  • 1567년 ~ 1608년

주요 업적

  • 임진왜란(1592~1598)과 정유재란(1597) 등 왜란을 겪으며 국난 극복에 분투
  • 이황, 이이 등 유학자들의 활약을 뒷받침
  • 왜란 후 국토와 민생 재건에 노력했으나, 조정 분열도 심화

선조는 전란 시기 피난 등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이 생존할 수 있었던 외교 및 군사적 조처를 추진했습니다. 그의 즉위 초반에는 비교적 개혁 의지도 있었으나, 전란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습니다.

 

 

15대 광해군(光海君) – 이혼

재위기간

  • 1608년 ~ 1623년

주요 업적(혹은 논란)

  • 전후 복구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대동법 시초를 마련한 측면
  •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외교 노선을 펴며 국익을 도모하려 했음
  • 궁중 파벌 다툼으로 계축옥사 발생, 인목대비 폐모 사건 등으로 평판 추락
  • 결국 인조반정(1623)으로 축출, 군(君)으로 강등

광해군은 한때 ‘중립외교’로 조선을 재건하려 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지만, 반정 세력에게는 “패륜 왕”으로 규정되어 폐위되었습니다.

 

 

16대 인조(仁祖) – 이종

재위기간

  • 1623년 ~ 1649년

주요 업적

  • 인조반정으로 즉위
  • 병자호란(1636), 정묘호란(1627)을 겪으며 청나라에 굴욕적 항복(삼전도)
  • 조정 내부 분열과 외교 정책 실패로 국가적 위기 초래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나, 청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굴욕적인 역사를 남겼습니다.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었습니다.

 

 

17대 효종(孝宗) – 이호

재위기간

  • 1649년 ~ 1659년

주요 업적

  • 청에 끌려갔다 돌아온 후, 북벌론을 추진하며 국력 회복에 힘씀
  • 실제로 대규모 북벌은 실시되지 못했으나, 군사력·경제력 증강 시도
  • 효종 자체가 병자호란 이후 회복기 왕으로 상징적 의미가 큼

효종은 직접적인 성과보다, 전쟁 후 재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실질적 북벌 시도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18대 현종(顯宗) – 이연

재위기간

  • 1659년 ~ 1674년

주요 업적

  • 대동법을 전라도로 확대 실시
  • 동철제 활자 10만여 글자 주조,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
  • 예송논쟁으로 당쟁이 심화되는 등 정치적 혼란도 존재

현종 시대에는 예송논쟁(2차례)에 따른 서인-남인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대동법 확장은 지방 세제 개혁에 중요한 지점이 되었습니다.

 

 

19대 숙종(肅宗) – 이순

재위기간

  • 1674년 ~ 1720년

주요 업적

  • 환국(換局)의 반복: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집권
  • 대동법 전국 확산,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 확정
  • 장희빈, 인현왕후 등 궁중 파벌 사건으로 유명

숙종은 정치 공작을 능숙히 활용해 왕권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그만큼 당쟁도 격화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여러 제도 정비와 대동법 완성이 두드러집니다.

 

 

장희빈( 張禧嬪)

희빈장씨, 장옥정

조선 19대 왕 숙종의 빈. 본명은 장옥정.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장희빈은 유례없이 악독한 경국지색의 요부로 알려져 있지만 숙종의 여인이자 경종의 어머니로서 당쟁과 환국으로 얼룩진 치열한 권력투쟁의 도가니 속에서 사랑과 고통, 갈등과 희망을 한 몸에 품었던 역사의 희생자였다.

 

20대 경종(景宗) – 이윤

재위기간

  • 1720년 ~ 1724년

주요 업적

  • 재위기간이 짧고, 신임사화 등 정치적 혼란
  • 연잉군(영조)과 노론·소론 간 당쟁이 극심
  • 실질적인 개혁을 펼칠 여력이 거의 없었음

경종은 독살설부터 건강이상설까지 각종 설이 난무할 만큼 당쟁의 희생양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이 인좌

이 현좌(李玄佐), 李麟佐

 

정 희량, 박필현 등과 함께 영조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이인좌의 난을 주도한 인물.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배하면서 초라한 역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새겨졌으며 (이인좌의 난) 이인좌의 난은 그때까지 조정에서 노론과 힘겨루기를 해왔던 소론 당파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내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나의 선행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이처럼 자신의 무책임한 조치를 불가피한 통치 행위의 일환으로 포장한다. 이에 대하여 정적들은 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거창한 기치를 내걸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권력을 움켜쥐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란 역시 노론과 소론, 남인이라는 정파로 갈려 한 시대를 주도하던 양반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고 벌인 일전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종실의 일원이었지만 치열한 정쟁에 떠밀려 권력계층에서 소외되었던 이인좌는 정희량, 박필현 등과 함께 영조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무신란를 주도했다가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배하면서 초라한 역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새겨졌다.

 

 

21대 영조(英祖) – 이금

재위기간

  • 1724년 ~ 1776년

주요 업적

  • 탕평책 실시로 당쟁 완화를 시도
  • 균역법 시행, 군역 제도 개선
  • 사도세자 사건(임오화변)이 남긴 왕실 비극
  • 신문고 부활, 청계천 준설 등 민생 정책

영조의 치세는 상대적으로 길었기에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이룰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 죽음은 큰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신 윤복

申 潤福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한편으로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과 함께 '삼원(三園)'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申末舟)의 11대손이기도 하다. 신윤복의 집안은 대대로 화공을 세습했는데 종증조부 신세담, 종조부 신일흥(申日興), 아버지 신한평(申漢枰)도 도화서 화원이였다. 신윤복의 형제로는 신인권(申仁權), 신의권(申義權), 신응권(申應權), 신양권(申亮權) 등 4명의 형과 남동생 신윤도(申潤濤), 성명 불명의 여동생이 2명 있었다. 어렸을 적 이름은 '가권'이였는데 결혼 후, '윤복'으로 개명한다.

 

김 홍도가 풍속화만 두고 보았을 때 서민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을 주로 그렸으며 특히 여성의 생활상이나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김홍도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김홍도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자주 그렸다. 김홍도는 왕을 상징하는 색인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빨간색을 사용해 풍자했다. 기생들과 양반들이 주요 모델이였기에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인 <혜원전신첩>은 양반 문화와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부 사극 제작 과정 영상을 보면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며 가체의 형태 등을 참고하는 모습도 보인다. 몇몇 작품에서는 동일 인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기생(흰 저고리+검붉은 깃+파란 치마)과 젊은 남성(초립+선홍색 도포)인데 신윤복의 이웃일 가능성도 있다.

 

 

사도세자 장조, 思悼世子

 

조선왕세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영조의 차남으로 모친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정실부인은 혜경궁 홍씨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정조를 낳았다.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사망했다. 이를 임오화변이라고 한다.

 

 

22대 정조(正祖) – 이산

재위기간

  • 1776년 ~ 1800년

주요 업적

  • 규장각 설치, 실학자 등용으로 문화·학문 융성
  • 탕평 정책 계승, 당파 간 균형 정치 시도
  • 화성(수원) 축조, 상업·군사적 중심지로 발전
  • 조선 후기 문예부흥(르네상스) 시기를 꽃피움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 개혁과 문화 발전을 동시에 이끈 능력 있는 군주였습니다. “이산”이나 “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정 약전

丁若銓

 

1758년(영조 34년) 3월 1일 ~ 1816년(순조 16년) 6월 6일

조선 시대 영조, 정조, 순조 때 살았던 성리학자, 실학자로 수산학자, 해양학자, 생물학자이다. 정 약용복자 정 약종의 형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이다. 종교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

 

정 약용

丁若鏞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실학자의 대표격 인물로 알려져 있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리에서 태어났다. 본관나주, 자는 미용(美庸) · 송보(頌甫), 초자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山) · 삼미(三眉) · 여유당(與猶堂) · 사암(俟菴) · 자하도인(紫霞道人) · 탁옹(籜翁) · 태수(苔叟) · 문암일인(門巖逸人) · 철마산초(鐵馬山樵) 등이 있다.

 

 

23대 순조(純祖) – 이공

재위기간

  • 1800년 ~ 1834년

주요 업적

  • 어린 나이에 즉위, 안동 김 씨 등 외척 세도정치 시작
  • 신유박해(1801) 등 대규모 천주교 탄압
  • 홍경래의 난(1811) 등 민란 발생으로 사회 혼란 심화

순조 이후로는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고, 외척이 국정 전반을 주도합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고, 여러 차례 민란이 발생했습니다.

 

 

24대 헌종(憲宗) – 이환

재위기간

  • 1834년 ~ 1849년

주요 업적

  • 외척(풍양 조씨) 위주의 세도정치 지속
  • 기해박해(1839) 등 천주교 탄압 강화
  • 왕권 회복 시도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

헌종 시기에도 천주교가 탄압받으면서 순교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사회·경제적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백성들의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25대 철종(哲宗) – 이변

재위기간

  • 1849년 ~ 1863년

주요 업적

  • 강화도령 출신으로, 즉위 전 서민 생활을 했던 특이 사례
  •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이어져 실권 부재
  • 잦은 민란(진주민란 등) 발생, 국가 기강 약화

철종은 궐밖의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왕으로 추대된 탓에 정치 기반이 취약했습니다. 민중 봉기가 자주 일어났고, 행정력 부재에 따른 혼란이 심했습니다.

 

 

장 승업

장경유(張景猷), 張承業

 

조선 후기의 화가. 호는 오원(吾園)이다. 오원이라는 호의 유래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주었다는 설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처럼 절세 화가의 호에서 착안해 '나도 원(園)이다.'라는 의미에서 나 오(吾)자에 동산 원(園)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사람에 따라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미술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왜냐하면 김홍도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에 꼽는 인물은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두 자리에 자리할 인물로는 신 윤복, 김득신, 심사정, 정선, 이암 등의 화가들이 거론된다. 조선의 3대 화가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조선의 유명한 화가들'로 통칭하자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장승업의 그림은 단순한 필치로 그려졌지만 필력에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이 있다. 장승업은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필체를 그림에 도입하여 대한민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장승업이 선택한 그림의 소재들은 진경 산수화를 선보인 정선이나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 신윤복 등과는 달리 전통 도석 인물화를 고집하여 고루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정선이나 김홍도의 뒤를 이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고미술 사학자들이 많다. 이 말인즉슨 한반도 강산을 그린 그림이 없다는 뜻이다. 정선 이후 한가닥한다는 화가들은 모두 금강산을 그려 남겼는데 장승업은 금강산은 물론이고 한반도 명승지와 관련된 그림은 한 점도 없다.

 

 

26대 고종(高宗) – 이희(혹은 이형)

재위기간

  • 1863년 ~ 1907년

주요 업적

  •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1863~1873) 하에 흥선대원군 개혁 추진
  • 대한제국 선포(1897) 후 황제로 즉위
  • 갑오개혁, 을미개혁, 아관파천, 을사늑약(1905) 등 격변기
  • 근대화 정책 일부 시도, 외교적 갈등 속에서 국권 약화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자 대한제국 황제이기도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 국권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 식민지화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명성태황후 민씨, 明成皇后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의 비. 구한말 국내외적 혼란기에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외세와의 대립 속에서 정치적 영역을 확대했다. 개국 정책으로 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했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에는 청군의 개입으로 정권을 잡았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27대 순종(純宗) – 이척

재위기간

  • 1907년 ~ 1910년

주요 업적(혹은 비극적 상황)

  • 이미 조선(대한제국)은 일본의 강력한 간섭 상태
  • 1910년 한일병합 조약으로 국권 상실, 조선왕조 518년 역사의 종말
  • 이후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며, 허수아비 황제로 전락

순종은 실질적인 통치 권한 없이 일본의 간섭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의 재위가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된 것입니다.

 

 

조선왕조는 이렇게 27명의 임금이 약 5세기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각 왕의 재위 배경과 정치적 환경은 물론, 외교와 군사, 문화와 사상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방대한 흐름을 통해 우리는 과거 한반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고, 또 어떤 위기를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계보는 단순 암기가 아니라,

 

당시의 권력구조, 당쟁, 외교정책, 문화정책을 함께 이해할 때 더욱 흥미롭습니다. 특히 왕릉과 실록, 그리고 다양한 역사 기록물을 참고하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복합적인 사회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조선 27대 임금의 묘호, 왕이름, 재위기간, 주요 업적(혹은 실정)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각각의 왕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원하신다면 《조선왕조실록》, 사학 전문 서적, 현대 연구 논문 등을 추가로 탐독하시면

 

더욱 풍성한 지식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